자유게시판

우리 말속 일본 잔재들

또하심 2006. 8. 11. 17:17
요즈음에는 많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전절후의 힛트를 쳤다고 하는 무슨 코드라는 추리 번역물도 읽다 보면 몇 가지의 오역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또는 어떤 경우에는 한 권의 책을 몇 사람이 나누어서 번역을 하게 되니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동정을 하게 되는데…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형사(수사)반장으로 불려야 할 Lieutenant가 느닷없이 중위가 되는가 하면 선장이나 함장이 되어야 할 Captain이 대위로 또는 이와는 반대로 나타 나는 것 등의 사소한 오역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일비재하였던 것이 사실 이며 그래도 이러한 것들은 애교(?)로 보아 넘길 수도 있는 문자 그대로 하찮은 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 얘기하고자 하는 “飜譯의 重要性”은 정말로 심각하며 절실하다 함을 結論에 앞서 미리 말해둔다. 2. 우리가 읽는 책들의 태반은 번역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飜譯이라는 말조차 아주 생소하게 생각하고 있다. 마치 聖經이 우리 말로 쓰여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만일 번역이 없다면, 옛 성인들의 말씀은 물론이고 철학, 과학, 문학 등등의 인류가 창조/창작해놓은 귀중하고도 아름다운 力作物들을 무슨 방법으로 接할 수가 있겠는가? 반대의 경우도 한 번 생각해 봄직 하다.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는 歐美의 學徒들이 우리 선조들의 작품들을 우리보다 앞서 그들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다.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번역이 없다면 무슨 수로 우리의 것들을 그들에게 알릴 수 있겠는가? 서양사람들에게 한국학을 포함한 동양학이 외국학 이듯이 서양학은 우리에게 외국학 인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작품들을 열심히 번역하여 그들의 콘텐츠를 풍부히 하고 있다면 우리도 응당 그래야 한다.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이어서 지식과 정보력이 한 나라의 국력을 매기는 현대사회에서 서구의 文物을 올바르고 정확 한 우리 말로의 번역에 최우선 순위의 중요성이 있는 것은 실로 당연하다 할 것이다. 3. 중국은 서구 열강들에게 침략을 받아 다른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고 조선은 내부적인 혼돈으로 말미아마 그 국력이 극도로 쇠잔해 지고 있을 즈음, 일본에서는 黑船 사건을 계기로 幕府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明治維新의 시대로 들어가게 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된다. 일본은 명치유신의 시대가 되자마자 곧 바로(1868년) 정부내에 飜譯局이라는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번역사업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약 10년에 걸쳐서 수 천 권의 서양의 문물. 제도를 번역할 수 있게 되어서 극동 3국 중에서 단연코 절대적인 기선을 잡게 된다. 서양의 문물과 사상의 受容이 오로지 근대국가의 건설이라는 大命題 아래, 일본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총동원되어서 번역 작업을 추진하였으며 이 때에 만들어진 말들이 : 共和, 民主, 憲法, 自由, 經濟, 討論, 民權, 社會, 個人 그리고 學校 등등을 필두로 全 인문 그리고 사회과학을 포함하는 모든 전문 용어들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작업에는 조선 말기의 개화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후꾸자와 유끼치(福澤 諭吉)도 깊이 간여 하였으며 실제로 그에 의해 창시된 단어도 상당수 있다 한다. 만들었다고 하지만 아무렇게나 만든 것이 아니고 중국의 古典들을 샅샅이 뒤져서 모든 관계 典範들을 찾은 다음, 용어/단어를 놓고 과연 그 말이 서양에서 정해졌을 때의 원래 의 趣旨에도 맞고 동시에 그들 일본의 情緖에도 부합되는지를 엄밀히 따진 다음에 결정 하는 등, 진실로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모든 용어들이 오늘 날 까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사용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일례로서 ‘共和’를 들어보자. 서양에서의 공화의 개념은 로마史에서 淵源한다. 즉 제1차 3頭정치(카에자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제2차 3頭정치(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에서 유래하는데 제2차 3두정치가 무너지면서 왕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공화의 개념을 두고 고심하던 차에 일본 학자들은 중국의 고대국가인 周나라 역사에서 기막힌 용어를 발견하게 된다. 즉 주나라 제10대째 왕인 厲(여)왕이 포악해서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궁성을 버리고 도망을 가게 되어 왕위가 비게 되는데 이때 소호, 윤길보, 중산보 등의 대신들이 태자가 등극하기 까지 14년 동안을 잘 다스렸으며 다음 왕이 中興主로서 알려진 宣王이다. 史記의 표현에 의하면 ; 上略 ‘共和’若沒中興主(공화약몰중흥주) ‘공화’중에 만약 중흥주 죽었던들 周歷安能八白長 (주력안능팔백장) 주나라 국운이 어찌 팔백년 넘게 누렸으리오 이리하여 Repulican의 개념은 당장 ‘共和’로 낙착된 것은 물론이다. 기타의 다른 말들도 하나도 서투르고 경솔하게 만들어진 것이 없을 정도이다. 몇 가지 재미 삼아 추가 해보자.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중국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했지만 이미 기차는 떠난 뒤였고 활 떠난 화살이었다. 거의 모든 典範들은 중국의 역사와 고전에서 出典 되었으나 그 주인은 완전히 기선을 장악한 일본이었다. 일본이 Baseball을 野球(마사오까 시끼<正岡 子規>라는 하이꾸<排句>의 大家가 창시 했다고 한다)로 Basketball을 籠球로 번역하자, 중국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던지 야구를 棒球로 농구를 籃(바구니 람)球로 부르며 안간힘을 다하였지만 별무소용이었다. 自由는 나까무라 마사나오(中村 正直)라는 근대 일본인이 존 스트워트 밀의 ‘On Liberty’ 를 1870년에 自由之理로 최초 번역 한데서 유래하였으며 조선의 유길준이 그의 저서 ‘서유견문’에서 소제목으로 ‘自由와 通儀’로 달아 그 뒤를 이었다. 얘기가 약간 옆으로 새지만, 한 마디만 더 하자. 싱거운 소리 좋아하는 사람들이 왈 이 지구상에서 일본사람 우습게 보는 사람은 한국사람뿐이란다. 그렇지만 한 번 보자. 명치유신이 되자마자 일본 정부는 번역사업뿐 아니라 일본사람들의 체격을 키우기 위해서 肉食을 강조했는데 서양 음식 그 자체로는 전혀 받아 드려지지 않았고 일본사람 특유의 받아드린 다음 자기 것처럼 만들기 재능이 발휘된 것이 소고기를 이용한 음식은 스끼야끼와 샤브샤브이고 돼지고기를 이용한 것이 다름 아닌 돈까쓰인 것이다. Pork cutlet가 포크 까쓰레쓰를 거쳐서 드디어 돈까쓰로 정착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들을 우습게만 볼 수 있는 것인지 상상이 안 간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이 애용하는 외식 메뉴의 하나인 돈까쓰 대신에 다른 명칭이 생각나는 사람 있으면 어디 말해보라. 지금 이 순간에도 김치와 불고기 등의 우리 음식들을 ‘규격화’해서 전세계로 재수출하는 사람들이 바로 일본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도 우습게만 보이는가? 4. 그러나 문제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 哲學과 歷史의 용어를 한 번 보자. 寡聞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古代 希臘語나 라틴(Latin)語를 직접 우리말 로 번역할 수 있는 학자가 몇이나 있을까? 불행한 일이지만 아마도 없을지 모른다. 이러다 보니 次善策으로 현재의 歐美國家들의 언어로 1차 번역된 것(대부분 獨逸語)을 再飜譯하는 것이요 最惡의 경우가 일본어로 1차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재번역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원래의 뜻이 제대로 살려질 이가 만무한 것이다. 상당히 많은 수의 학자들이 손쉬운 방법을 택하느라고 최악의 경우인 일본어로 1차 번역된 것을 우리 말로 재번역 하는 경우가 빈번했는데, 이 경우에 遍在性의 保證은 무엇이고 自愛的 優越感은 무엇이며 卽自나 對自的은 또 무슨 뜻인가? 이렇게 황당하게 어려운 말에 우리를 뜯어 맞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라도 늦지 않았 으니 적절한 우리 말로 원어에서 직접 번역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기회는 아직 있다고 하는 말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번역이 저술보다 두 배는 더 힘든 작업이라고. 번역은 연구 논문보다 열 배는 더 어려우면서 創意力과 想像力을 要한다고. 또한 번역은 세월을 견딘 무게가 있으며 派生的 지식을 위해서도 열려 있으므로 人文學의 死活이 오로지 번역에 달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 가지 더 붙이자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漢籍의 번역을 이제부터 本格的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일본어로 번역된 서구의 사상과 학문이 氾濫하면서 우리의 전통은 잊혀졌고 감상적인 한글전용의 주장으로 인하여 우리 문화와 사상을 담고 있는 한문의 寶庫를 너무 등한시했다. 번역의 質을 높이고 量을 대폭 확대하고 한문 투 에서 벗어나서 현대적으로 읽히는 번역문을 만들어야 한다. 이 정도 번역이라야 번역이 지식으로 자원화 할 수 있고 또한 외국어로도 번역될 수 있다. 문화에 기반한 국가경쟁 력이 그것을 통해 확대되고 유통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이 國粹主義的으로 흐를 필요는 물론 없고 현대의 국제사회는 그러한 흐름 을 용인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국경이 없는 시대에 독자적이며 굳건한 영역을 확보하며 살기 위하여는 고유의 전통과 사상이 확고한 밑거름이 되어 있어야 한다. 소위 Identity 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Corner kick이라고 외칠 때에 굳이 ‘모서리 차기’를 주장한 저들이 더 이상 가련하지만은 않고 약간은 기특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그들이 국가적인 사업으로 번역해 놓은 우리 조상들의 사상과 학문을 접하면서 느낀 점은, 번역 그 자체도 훌륭함은 물론 여러 가지 면에서 위의 요구 사항을 거의 충족시키는 것 같아서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우리는 왜 이럴까 하고 말이다. 5. 일본인 관광객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처음 느끼게 되는 점은 글씨를 대할 때에 전혀 낮 설지가 않다는 점이란다. 왜? 거의 모든 지명과 안내판 속의 한자들이 그들이 저희 나라에서 써 왔던 慣行 그대로 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담한 마음으로 부끄러워 해야 한다. 과거 10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을 일본인의 번역에 무임승차를 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는 일본이 번역한 말들, 그것들이 전문 용어이든 비전문적인 말이든 불문하고 無意識的으로 그리고 無批判的으로 常用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정말로 중요하고도 절대적인 문제점인 것이다. 고뇌에 찬 모색 끝에 만들어진, 우리 자신의 전통과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만의 말” 을 통해서 서양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문화와 사상 등을 보지 못하고 일본인의 눈과 말 을 통해서 저들을 보아 온 것이다. 이것은 진정코 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하도 오랜 세월 동안 그래 왔기 때문에 이제는 自覺症勢 마저 없어졌다.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한 가지 비유를 해보자. 오늘 날 온갖 국지전과 갈등 그리고 비극의 진원지인 중동지방의 국가들을 보자. 그들 국가와 사람 들에 대한 지식을 우리는 누구를 통하여 얻었는가? 바로 미국 사람들의 눈과 영어를 통해서 이다. 만일 이스람들의 눈과 그들의 말 아니면 우리의 눈과 말로서 중동에 대한 지식을 얻었어도 지금과 같이 그들 보기를 소 닭 보듯 할 수 있었을까? 이것이 중세의 십자군전쟁을 재 해석하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실제로 많은 기독교인들은 십자군전쟁 당시 무스림들이 십자군보다 훨씬 더 온정주의자였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는다. 아니 애초부터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6. 이제 말을 맺도록 하자. 심하게 얘기해서, 번역을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은 知的으로나 文化的으로나 아직도 植民地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詰難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어찌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니겠는가?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들의 정서에 맞는 창작에 못지 않은 아니 창작보다 몇 배 더 훌륭한 번역들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번역이 우리의 지적인 내면을 한 층 더 풍부하게 만들 때 비로서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정신적인 독립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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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실 : 일본을 계산없이 얄미워하고 미워하기보다 국가적인 계획으로 연구하여 이런 문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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