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카라얀 에피소드

또하심 2006. 8. 11. 17:19
비르기트 닐손과 카라얀과의 정면 충돌!


1968년 메트에서의 "니벨룽의 반지" 공연에서 비롯된 '사건'은 세계 오페라계에서의 닐손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건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 음악계에 거의 지배하다시피 군림했던 대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은 나치에 협력했다는 오명으로 인해 1968년까지 메트의 지휘대에 단 한 번도 선 적이 없었습니다. 유태계가 유난히 많은 뉴욕 청중들의 반감도 원인이었거니와, 무엇보다 역시 유태계라는 이유로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조국 오스트리아를 탈출하여 망명해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지닌 메트의 카리스마적인 총감독 루돌프 빙(Rudolf Bing)이 카라얀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지휘자도 아닌 카라얀을 언제까지나 모른척할 수도 없어 결국 빙은 카라얀을 메트에 초청했고, 카라얀은 닐손을 위시한 톱스타들을 기용하여 1968년에 "니벨룽의 반지" 전 4부를 메트 무대에 올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일이 무척 순조로웠습니다만, 이 공연에서 카라얀이 연출까지 맡으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혼자서 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성격 탓에 카라얀은 황당하게도 무대는 온통 어두컴컴하게 만들어놓고 엉뚱하게 지휘대에만 조명을 비추어 무대 위의 가수들이 아닌 자신에게로 청중의 주의가 집중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연출에 모두들 (특히 가수들이) 아연실색했습니다만, 유럽 음악계에서의 카라얀의 막강한 입김을 생각하면 감히 카라얀에게 맞대놓고 이의를 제기하는 용감한 가수는 없었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바로 닐손이었으니, 그녀는 광부들이 갱도에 내려갈 때 쓰는 전등이 달린 헬멧을 쓰고 무대에 등장하여 노골적인 항의 시위를 벌였습니다. 상황은 닐손과 카라얀의 정면 대결로 치달았고, 긴장된 와중에서도 공연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의 리허설 도중 어두컴컴한 무대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진 닐손은 발목 골절상이라는 중상을 당했습니다.


 

이 부상으로 인해 닐손은 이후 수 개월간의 공연 스케줄을 모두 취소해야만 했고, 카라얀은 닐손이 주도하는 여론의 거센 비난에 밀려 (그녀는 직접 신문에 기고한 장문의 글을 통해 카라얀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결국 메트에서 '밀려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메트에 단단히 원한을 품은 카라얀은 이후 두 번 다시 메트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고, 닐손과도 다시는 함께 일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닐손은 부상에서 회복된 이후 이것 보라는 듯이 메트에서 여전히 맹활약했습니다.)

 

http://blog.naver.com/boccacio/7688626

 

브뤼노 몽생종_'회고담과 음악수첩'의 리흐테르 vs 카라얀


리흐테르와 카라얀이 함께한 챠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

저는 그 연주를 ..두 거장의 아슬아슬한 신경전.. 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특히 3악장. 광풍처럼 몰아치는 카라얀과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리흐테르는 참으로 맥빠지는(호호-카라얀에게 말이죠) 도입부를 선사합니다.      

아니 이 사람들 왜 그럴까 했는데. 브뤼노 몽생종의 리흐테르 책에 그 이유가 있더라구요.

쿡쿡. 귀여운 할아버지들 같으니라구.

Episode I. 

카라얀의 지휘로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포비치, 리흐테르가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을 녹음할때의 일. (이하는 책 내용 발췌)

....이것은 내가 전혀 인정하지 않는 형편없는 녹음이다...........카라얀은 이 작품을 피상적이고 명백하게 잘못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제 2악장의 템포가 너무 느렸다. 카라얀은 음악의 자연스런 흐름을 막고 있었다. 그건 자신을 높이기 위한 거드름이었다. 오이스트라흐도 나도 그것이 마뜩치 않았다. 하지만 로스트로포비치는 갑자기 의견을 바꾸었다. 그는 교묘하게 첼로를 전면에 내세우려고 애썼다. 그 대목에서 첼로는 들러리 역할을 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카라얀은 내가 언짢아하고 있다는 것과 오이스트라흐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일부러 피아노가 뒤로 물러나 있는 듯한 기분으로 연주를 했다. 카라얀에게 맞서기 위해서라기보다 로스트로포비치가 나를 짜증나게 하기 때문이었다.......어느 시점이 되자 카라얀은 모든 게 제대로 되었다면서 녹음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나는 보충용으로 녹음을 한 차례 더 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더는 시간이 없네. 이제 사진을 찍어야 해." 하고 대답했다. 사진!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그 사진을 보면 카라얀은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고 우리는 바보들처럼 미소를 짓고 있다. 얼마나 역겨운 사진인가!

(바로 그 문제의 사진! 왼쪽부터 리흐테르, 로스트로포비치, 카라얀, 오이스트라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