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시렁거리기...^^

[스크랩] [20 세기를 빛낸 10인의 첼리스트 7] 안너 빌스마 (1934 ~ ) / bach, cello suite no 6

또하심 2018. 5. 22. 17:59



bach, cello suite no 6, bylsma





Anner Bylsma(안너 빌스마)


네덜란드의 첼리스트.

"바로크 첼로의 로스트로포비치"라는 진부한 수식어는 이제 그에게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요즘은 "거장"이라는 표현을 너무 남발하고 있는 것 같으나 거장이라는 말은 바로 빌스마와 같은 연주자를 위해 준비된 것이다.
60년대 암스테르담 4중주단(Quadro Amsterdam)결성이후 가장 최근의 베토벤 첼로 소나타 음반(소니 비바르테, 99년)에 이르기까지 30년 이상 바로크 첼로를 연주해 오면서 무반주 연주의 명인, 협주곡의 유능한 솔리스트,충실한 실내악 연주자, 절묘한 바소 콘티누오 연주자로서, 17세기 이탈리아의 초기 첼로 음악에서 20세기의 힌데미트와 메시앙에 이르기까지, 그 레퍼토리의 넓이와 연주의 깊이는 필적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는 원전악기와 현대악기의 편가름을 떠나서 모든 첼리스트의

존경과 찬사를 한몸에 받는 아마도 유일한 바로크 첼리스트 일

것이다. 그는 최초이자 진정한 대가이다.

바로크 첼로의 초기 개척자인 아우구스트 벤칭어(August Wenzinger),파울 자허(Paul Sacher), 클라우스 슈토르크(Klaus Stork)등이 기술적인 한계와 한정된 레퍼토리의 장벽에 직면하여 이제는 학자로서만 그 이름이 희미하게 기억되는 것과 달리 21세기를 앞둔 지금도 빌스마는 이제 그가 배출한 제자들과 어깨를 겨루며 당당한 현역으로서 정력적인 연주 활동과 녹음을 하고 있다.




1934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태어 난 안너 빌스마는 처음에 주요한 음악 교육을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았고 마리누스 스뇌렌(Marinus Snoeren)에게 처음 첼로 교습을 받았다.
이후 헤이그에 있는 왕립 음악원에서 카렐 반 레우벤 봄캄프 교수(Prof. Carel van Leeuwen Boomkamp)에게 사사했는데, 이때 처음 바로크 첼로를 접하게 되었다.
1957년, 빌스마는 음악원 졸업과 함께 최고상(Prix d'Excellence)을 획득했는데, 이때 그는 이미 암스테르담에 있는 네덜란드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로 프로 연주자로서의 경력을 쌓고 있었다.
1959년, 멕시코의 파블로 카잘스 경연대회에서 우승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으며, 1962년에서 1968년 사이에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를 역임했다.

이 시기에 빌스마는 점차 일어나기 시작하던 고음악 운동의 영향을 받아 고음악과 오리지널 악기에 의한 실내악의 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곧 동향의 음악가들로서 이미 고음악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바이올린의 얍 쉬레더(Jaap Schreder), 플루트와 리코더의 프란스 브뤼헨(Frans Br ggen), 하프시코드의 구스타프 레온하르트(Gustav Leonhardt)와 함께 바로크 실내악을 연주하기 위한 앙상블인 암스테르담 4중주단(Quadro Amsterdam)을 결성했다.
그는 이때부터 오케스트라 활동을 그만두고 독주자와 실내악 연주에 전념하게 된다.
그는 바로크와 고전시대 음악을 오리지널 악기로 연주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근, 현대 음악의 연주에도 관심을 기울여 20세기 실내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론돔 사중주단(Rondom Quartet)의 멤버로도 활동했고, 바이올리니스트 베라 베스(Vera Beths)등과 함께 연주한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필립스)는 이 작품의 탁월한 연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독주자로서 요스 반 이머젤(Jos van Immerseel), 봅 반 아스페렌(Bob van Asperen)과 같은 건반악기 연주자들과 자주 연주하고 있으며, 바이올린의 베라 베스,비올라의 위르겐 쿠스마울(J rgen Kussmaul)등과 함께 만든 원전악기 실내악 그룹인 라르키부델리(L'archibudelli)에서도 활발한 앙상블 활동을 하고 있다.

빌스마는 어떻게 고음악과 원전악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는 암스테르담 4중주단이 처음 결성될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저도 이 곡(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기 시작할 즈음에는, 제 스스로 연주를 하면서도 질려버려, 이런 식으로 한다면 청중을 즐겁게 하는 일은 생각도 못하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가 레온하르트와 브뤼헨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어 바흐 음악에 대한 내 생각도 많이

변했습니다.
레온하르트는 위대한 음악가입니다.

그와 15년간 함께 일을 한 것은 내 자신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텔덱의 다스 알테 베르크(Das alte Werk)에서 녹음된

텔레만의 <6곡의 파리 4중주>(64년 녹음)는 이들 앙상블의 위대한 유산으로서 아직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으며, 이 시기에 얍 쉬레더가 이끄는 콘체르토 암스테르담과 협연한 보케리니의 <첼로 협주곡>도 대표적인 초기 레코딩이다.
그러나 암스테르담 4중주단이 처음부터 모두 원전악기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고,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완전한 바로크 악기의 주법을 익힐 수 있었다.


70년대에 브뤼헨, 빌스마, 레온하르트 트리오의 활약은 텔덱 및

SEON에서 녹음된 수많은 음반들(특히 이름높은 코렐리의

<라 폴리아 변주곡>을 비롯하여)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데,

이때 빌스마는 단순한 반주의 차원을 넘어선 진정한 콘티누오 첼로의 예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고, 바로크 실내악의 연주 수준을 한차원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빌스마의 연주에 대해서 그라모폰지가 "진정한 시인"이라고 평가한 것은 정당한 것이다.
그의 연주는 흔히 원전악기 연주에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인 작은 다이나믹과 딱딱함, 표현력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저음역에서의 풍부한 표현과 활력, 그리고 고음역에서의 탁월한 인토네이션과 명징한 톤, 노래하는 듯한 하이 표지션의 황홀한 운지가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다.
또한 그의 연주 스타일은 사용하는 악기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빌스마의 악기는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베니스 첼로 학파의 선구자이자 스트라디바리에 필적하는 탁월한 첼로 제작자였던 마테오 고프릴러(Matteo Goffriller)의 악기이다.

그는 몇몇 레코딩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프릴러의 첼로로(최초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녹음을 포함하여) 연주했다.
이 악기는 스트라디바리 "세르베"(두번째 무반주 모음곡 녹음에서 사용했던)에 비해 언뜻 선이 가는 듯하게 들리지만, 전체적으로 탁월한 울림과 힘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저음역과 대조되는 우아하고 독특한 음색의 고음역을 지녔다.
그는 또한 비올론첼로 피콜로라고 부르는 바로크 시대의 소형 첼로의 뛰어난 연주자이기도 하다.


이 악기는 다섯개의 현을 가진, 첼로보다 작고 높게 조율되며 동일한 자세로 연주하는 악기인데 바흐의 여섯번째 <무반주 모음곡>과 몇몇 칸타타(BWV6, 41, 49, 68, 85, 115, 175, 180, 185)에서 오블리가토 악기로 쓰였다.
동일하게 조현되며 어깨에 올려놓고 연주하는 비올라 폼포사라는 악기도 있었으나 아마도 바흐가 실제로 사용한 것은 비올론첼로 피콜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빌스마는 두번째 무반주 녹음과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의 연주 등에서 이 악기를 사용했는데, 그 가운데 바이올린과 플루트를 위한 무반주곡을 비올론첼로 피콜로로 편곡해 연주한 음반(도이췌 하르모니아 문디)이 가장 흥미롭다.



그는 음악과 음의 종류(악기와 그 주법), 말하는 법(연주습관) 등을 재발견하고자 하는 시도가 중요함을 강조하며,

바로크 당대의 악기와 연주양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 동료들의 연주방법에서 특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그들이 지나치게 연주하고 과장되게 표현하려고 하는

점입니다. 모던 첼로 연주자 가운데에는 바흐시대의 프랑스 음악과 이탈리아 음악의 차이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바흐의 모음곡은 프랑스 양식의 모음곡을 토대로 양자의 특색이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모던 첼로 연주자 가운데에는 자신이 강한 감동을 받아 연주할 때, 이는 청중에게도 확실히 전달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저한도로 필요한 지식이나 시대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연주하는 것은 단어의 정확한 의미도 모르고 말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음악은 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요.

혹시 당신이 과거의 음악을 위대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다음 단계로 작곡자는 이 음악이 어떤 식으로 연주되길 바랬을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흐 자신의 의도, 바흐가 스스로 어떻게 연주했는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흐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때 당시에는 음악이라고 하는 말이 어떻기 이야기되어졌는지 아는 것은 실제로 바흐의 작품을 연주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빌스마는 반드시 오리지널 악기를 사용하거나 꼭 초연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조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당대의 악기와 연주법을 사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유연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두번째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에서 바로크 활 대신 근대적인 활을 대표하는 19세기 활의 명장 도미니크 페카트(Dominique Peccatte)의 활을 썼고, 바흐의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비올라 다 감바와 하프시코드의 앙상블 대신, 비올론첼로 피콜로와 실내 오르간이라는 극히 독특한 편성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타펠 무지크'나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같은 일급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오르페우스 실내악단'이나 '오스트렐리아 실내악단'과 같은 모던악기를 사용하는 훌륭한 연주단체들과도 함께 종종 보케리니나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첼로 협주곡>을 협연하기도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정격성에 대한 빌스마의 답변은 간단하면서도 그의 사상을, 또한 정격주의자들이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정격성이요?
누군가 당신이 잘 알고 있는 작품을 연주하고 있을 때, 그것이 갑자기 예전보다 훨씬 아름답게 들리게 된다면, 음악이

진실되고 생기가 있으며 당신의 슬픔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정격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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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풀잎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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