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시렁거리기...^^

[스크랩] [20 세기를 빛낸 10인의 첼리스트 5] 야노스 슈타커,Janos Starker

또하심 2018. 5. 17. 19:18



Janos Starker in Recital: Part 2 of 4. Boccherini: Sonata in A Major 



야노스 슈타커,Janos Starker(1924- ) 헝가리 태생의 미국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로 굴곡진 20세기를 살면서 자의로 고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개척했고, 서구 현대 문명의 특징인 냉철한 이성주의와 관념주의적 접근에 의한 절대미를 추구한 냉철하고 지적인 연주자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도 필요 이상의 몸짓이 없고 오직 음악을 위한 종사자이고자 했던 20세기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중 한 사람이며, 현역 독주자 중 최원로급에 속한다.

야노스 슈타커는 1924년 7월 5일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원래 러시아 태생으로 헝가리로 이주했는데, 당시 국적도 얻지 못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일찍이 감지하고 7세부터 첼로를 가르쳤다. 그는 부다페스트에 있는 리스트 음악원(Franz Liszt Academy of Music)에 입학해 다비드 포퍼(David Popper)의 제자였던 아돌프 쉬퍼( Adolf Schiffer)문하에 들어가 15세에 졸업했다. 11세의 어린 나이에 연주대에 오른 슈타커는 1939년 음악원을 졸업할 즈음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이미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부다페스트 리스트 음악원 학생 시절, 자신의 스승 캐러비에게 코다이(Zoltán Kodály)가 헌정한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초연하였다. 이를 계기로 슈타커와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세계 음악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졸업 후, 부다페스트 국립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로 취임하면서 연주가로서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연주는 물론 거의 2년 동안 첼로를 만져 보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활동을 시작했는데, 1945년에는 부다페스트 오페라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을 겸임하게 되었고, 비로소 헝가리 국적을 획득했다. 또한 피아니스트인 조지 쉐박(Gyorgy Sebok)등과 트리오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헝가리에서의 활동을 멈추고 1948년 루마니아,오스트리아,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댈러스 교향악단의 수석주자가 되었다. 그 후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의 요청으로 1949년부터 1953년까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다.



직선의 위, 눈에 보이는 건 불행이고

직선의 아래, 보이지 않는건 행복이라 하자

 직선의 상부는 슬픈 기억이 쌓이는 곳

직선의 아래에는 행복이 누적되는 곳

결국은 직선의 위로 솟아 나올 것


어찌 보이는 불행만 탓을 하고

보이지 않는 행복은 찾으려 하지 않는가

허구와 위선이 공존하는 동전의 양면 보다

행불행이 양분된 平行線(평행선)에서 죽고

平行線(평행선)에서 살자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풀잎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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