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시렁거리기...^^

샌디 코팩스

또하심 2014. 11. 15. 13:57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던 NL MVP. '그건 포지션 플레이어의 차지'라고 생각하는 오랜 관념은 이번에도 예외를 적용해야 했다. 그만큼 그의 실적은 탁월했다. 타자 쪽에서 특별한 경쟁자가 없었다고는 해도, 그의 수상은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리그로만 따지면 1968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밥 깁슨 이후 46년만에 처음 아니었나.

사이영상도 마찬가지다. 애초부터 수상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에 다 돈을 거는 도박회사 조차 베팅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이 부문을 없애버릴 정도였다. 다만 관심은 만장일치냐, 아니냐였다. 왜? 아시다시피 미국에는 워낙 독특한 생각을 가진 독특한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작년(2013시즌) 그가 생애 최고의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음에도 30명의 투표인단(각 지역 야구 기자들) 중 딱 한사람(신시내티 지역)이 2위표를 주는 바람에 만장일치에 실패하고 말았다.

말 나온 김에 사족 하나 달고 간다. 미국 사람들 특이한 점 말이다. 누군가 그랬다. '미국이 왜 강한가'에 대한 답은 '다양함'이라고. 수많은 피부색과 인종, 종교, 언어들이 섞여 있으면서도 그게 결국 용광로에 녹아 거대한 힘으로 재생산 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모두가 '예'라고 할때 혼자 '아니요'라고 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아니 존중까지 해준다(물론 그러다 욕먹는 때도 있지만).

유명한 케이스가 올 초 명예의 전당 투표 때 나왔다. 그렉 매덕스의 헌액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따라서 100% 득표도 가능할 지 모른다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돌발 변수가 생겼다. 투표인단 중 한 명인 MLB.com의 기자 켄 거닉이 기권한 것이다. "약물 시대의 선수에게는 절대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소신 탓이었다. 매덕스는 약물과 전혀 관계없는 깨끗한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지를 관철했다. 류현진의 담배 문제를 이슈화해서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켄 거닉 기자는 이 사건 때도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커쇼도 무릎 꿇는 폭발적 5시즌

사자같은 갈기 머리를 휘날리는 26세 투수의 화려한 도전은 감탄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가 늘 비교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울 상대를 만나게 된다. 그가 누구냐? 바로 줄곧 비교의 대상이 되는 샌디 코팩스다.

걸핏하면 볼넷을 주는 형편없던 투수 코팩스는 1960년 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글러브와 스파이크를 클럽 하우스 쓰레기통에 던졌다. 6년이나 해봤는데 영 가능성도 보이질 않는데다, 뭔가 변화를 위해 요청했던 트레이드마저 거부되자 다 때려치고 사업이나 하겠다고 강짜를 부렸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아낀 동료 한 명이 글러브와 스파이크를 도로 줏어와 몰래 보관했다. 그리고 코팩스는 한 해만 더 해보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어느 때보다 충실한 겨울을 보냈고,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선발로 예정됐던 투수가 비행기를 놓치면서 코팩스가 나서게 됐고 여기서 7회까지 호투했다. 붙박이 선발로 자리잡은 그는 그 해 18승 13패 탈삼진 269개를 잡아내며 신기록을 세웠다.

본격적인 활약은 홈구장이 현재의 다저 스타디움으로 옮긴 뒤부터 시작됐다. 파울 그라운드가 유독 넓어 투수 친화적이었던 그곳에서 그의 야구 인생은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그 안 잡히던 영점이 정렬되면서 이후 5년 동안 리그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181경기에 나와 111승 34패, 승률 .766, ERA 2.02의 어마어마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진짜로 커쇼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 스탯(statㆍ기록 숫자)은 이제부터다. 그 181경기 중에 무려 100게임이 완투였고, 그중 33번은 완봉승이었다. 5년 내리 ERA 타이틀은 그의 차지였고, 다승과 탈삼진까지 독식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휩쓴 게 세번이었다. 300K가 넘는 시즌을 세번이나 치러냈는데 이는 1800년대 이후로는 아무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다. 당연히 그때마다 사이영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물론 커쇼도 이번이 세번째 사이영상이다. 하지만 코팩스 시대에는 양리그에서 수상자를 1명만 뽑았다. 게다가 코팩스는 3번의 수상 때마다 투표인단에서 딴소리 하는 기자가 없었다. 한결같이 만장일치 수상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사이영상과 리그 MVP를 휩쓴 적도 있었다. 4년 연속으로 노히터 게임을 기록하기도 했다(그 중에 한번은 퍼펙트 게임).

가장 결정적인 차이 - 가을 DNA

코팩스는 현재도 다저스에서 특별 고문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커쇼에 대한 애정을 보인다. 그는 커쇼가 지난 해 사이영상을 받자 "이제 겨우 두번째일 뿐"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될 그의 시대를 예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각별한 애정을 갖고, 미디어에서는 '코팩스가 다시 나타난 것 같다'는 표현을 쓰지만 커쇼가 감히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영역이 있다. 바로 가을 DNA다. 코팩스가 진짜 전설로 평가 받는 이유는 월드시리즈에서 보여준 눈부신 활약 때문이다.

1963년 미키 맨틀과 로저 매리스 같은 대타자들이 즐비한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1차전 2실점 완투승, 4차전 1실점 완투승으로 4연승 스윕 우승을 달성했다. 또 2년 뒤 미네소타 트윈스와 맞붙은 WS에서는 가장 결정적이었던 5차전과 7차전에서 두번이나 완봉승을 거두며 정상 등극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물론 커쇼는 현존하는 최고의 투수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신계에 근접한 존재일 지 모른다. 그러나 코팩스의 시절에 그의 투구를 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얘기할 지 모른다. "커쇼? 좋은 투수지. 그런데, 코팩스에 비하면 아직 멀었어"라고.

당시 코팩스를 발굴해낸 다저스 스카우트는 알 캠퍼니스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내 평생 살면서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전율을 느꼈던 순간은 두 번 있었다. 한번은 시스틴 성당의 천장을 봤을 때였고, 다른 한번은 샌디 코팩스가 던지는 직구를 봤을 때였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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