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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당신의 클래식]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또하심 2007. 3. 1. 21:05

 

198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에 ‘논장’이라는 서점이 있었지요. 4평 남짓했던 이 작은 책방에는 ‘불온한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가끔씩 경찰들이 들이닥쳐 그 책들을 압수해가곤 했지요. 하지만 ‘추억’은 때때로 역설적인가 봅니다. 가끔 그 시절의 ‘논장’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책을 뒤적이던 젊은이들의 온기가 가득했던 공간. 저 역시 그곳에서 하릴없이 책장을 넘기며 친구를 기다리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쇼스타코비치’를 만났습니다. 녹음 테이프였지요. 스무개 정도 되는 녹음 테이프가 카운터 옆에 쌓여 있었습니다. ‘교향곡 5번 D단조’였지요.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아직 건재하던 그 시절에, 20대 청년의 눈에 가장 먼저 빨려들어온 단어는 ‘혁명’이라는 부제(副題)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요. 그래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테이프가 다 닳아서 더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혁명’을 듣고 또 들었지요. ‘빠암~ 빠밤’ 하면서 고음과 저음의 현(絃)이 대구처럼 펼쳐지는 1악장 시작부터, 왠지 가슴 두근거리는 감흥을 느끼곤 했습니다. 음악이란 그렇게, 개인적 체험과 상상력으로 재구성되는 ‘시간예술’이지요. 80년대 후반이 돼서야 일본 도쿄의 메이지대학 앞에 있는 레코드점에서 이 곡을 CD로 구했습니다. 므라빈스키가 지휘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연주였지요.

사실 ‘혁명’이라는 부제 자체도 쇼스타코비치가 붙인 것은 아닙니다. 즉 표제음악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정작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곡의 주제는 인간성의 확립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정적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으며, 나는 그 중심에 서서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체험에 대해 생각했다. 피날레에서는 이제까지 등장한 모든 악장의 비극적 긴박함을 해결하고, 밝은 인생관과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과 상통하지요. 한 인간의 역경과 고뇌, 이를 극복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전개되는 환희와 승리의 피날레는 베토벤 5번을 고스란히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베토벤의 피날레가 하늘이 환하게 열리는 듯한 느낌인 것에 비해, 쇼스타코비치의 4악장은 여전히 절망의 늪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지요. 1936년은 쇼스타코비치가 정치적 ‘벼랑’ 끝에 서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 소련의 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대해 혹평을 퍼붓고 있었지요.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이 혹평은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1936년 1월28일, 나는 프라우다를 사러 역에 나갔다. 신문을 넘기다보니 ‘음악이 아니라 황당무계’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구절을 영원히 가슴 속에 새겼다. 이것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구절이 될 것이다.”

이 내성적인 작곡가는 37년에 교향곡 5번의 작곡에 돌입, 그해 가을에 곧바로 완성합니다. 아주 빠른 속도였지요. 또 그는 이 곡에 대해 ‘당국의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답변’이라고 스스로 언급합니다. 그렇게 해서 정치적으로 복권되지요.

마지막 4악장의 다소 허풍 섞인 팡파레를 들을 때마다 ‘인간’ 쇼스타코비치가 받았을 상처와 스트레스, 혹은 불안감이 떠오릅니다.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15년에 걸쳐 연주해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집’(EMI)을 권하고 싶네요. 모두 10장으로 구성됐지만, 가격이 비교적 저렴합니다. 지휘자 얀손스의 ‘작가주의적 열정’이 가득한 컬렉터 아이템입니다.

〈문학수 기자〉

출처 : Easy의 고전음악방
글쓴이 : Eas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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