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시렁거리기...^^

[스크랩] 풍부한 정서, 힘찬 정열, 찬연한 기교 - 베토벤의 행복함이 묻어나는 - 바이올린 협주곡 "라 장조"

또하심 2018. 9. 8. 10:45
 



루트비히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

Beethoven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61 | Complete | Best Version


Beethoven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61" performed by US Marine Chamber Orchestra

(musopen.org/music/190-violin-concerto-in-d-major-op61) Public Domain Mark 1.0


https://youtu.be/q4KOmde7Obk


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In D major op.61 (1806)

1806년 그가 36세 때에 작곡한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명 바이올리니스트 클레멘트를 위하여 쓴 걸작입니다. 베토벤은 여기서 바이올린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구사했으며 오케스트라와의 융합을 이루어 교향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 당시 오스트리아는 프랑스군에 점령당한 때였지만 불멸의 애인 테레제와의 희망에 찬 교제가 한창이었으므로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습니다.규모가 큰 구상에 풍부한 정서, 찬연하고 어려운 기교 등으로 보아 그의 독특하고 힘찬 정열을 가진 작품입니다.


1 mov.Allegro ma non troppo
2 mov.Larghetto attaca
3 mov.Rondo-Allegro


베토벤/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61 해설

Beethoven, Ludwig van (1770-1827 G)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61
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In D major op.61 (1806)
(Cadenzas by Kreisler)


악성 베토벤은 고전 음악의 최대의 완성자인 동시에 그 완전한 형식적인 예술에 보다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내용을 담은 위대한 작곡가였습니다.그는 영웅적인 백절불굴의 투지로서 모든 난관을 극복한 승리자였으며 철학자이며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애를 실천한 인도주의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은 고전의 형식미에서 벗어나 낭만주의 음악에 문을 연 교량적인 역할을 한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음악가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를 제2의 모짜르트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는 모짜르트처럼 신동은 아니였으나 음악적인 천분을 마침내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7세 때에 그 당시 음악의 중심지였던 비인으로 갔습니다. 그의 본격적인 음악 교육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1792년 22세 때에 그가 비인에 나타났을 때는 작곡가라기보다는 먼저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나 많은 역경과 고난이 겹쳐 들었습니다. 생활은 곤란했고 사랑은 실패했으며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귓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1814년 이래 그는 완전한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고통 속에서도 비할 바 없는 위대한 예술이 나타났습니다.

1815년 이후의 작품은 그의 모든 창작 중의 일대 전환인데 웅대한 구상과 자유로운 형식, 진지한 표현 등은 거성이 아니고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작품은 낭만적인 영향도 받았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고 냉정했으며 안정된 형식미를 갖추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생명의 체험을 합리적인 형식을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보통 3기로 나누는데,


제1기((1786-1803) 초기의 작품으로서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영향을 받은 때입니다. 교향곡 제1,2번이 이 시기의 작품입니다.

제2기(1804-1816)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독창적인 시기입니다. 교향곡 제3번에서 제8번까지의 작품입니다.
제3기(1817-1827) 초인간적인 최고의 예술인데 영감의 창작기입니다. 청각을 거의 잃어버린 이후의 감각을 초월한 시대의 작품을 보였습니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교향곡 제9번 등이 있는데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음악사상 최고에 속합니다.베에토벤이야말로 많은 유산을 우리 인류에게 남겼다고 하겠습니다.

 20180607challea5913

루트비히 베토벤 / Ludwig van Beethoven

독일 출신의 음악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과도기에 등장했다. 청각을 잃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작곡에 몰두하여 수많은 주옥같은 음악을 남겼다. 성악곡에 비해 열등하게 여겨지던 기악곡을 최고의 위치로 부상시켰으며, 교향곡과 현악 4중주곡을 최절정에 올려놓았다.

베토벤을 이야기할 때 음악가로서의 업적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음악가에게 치명적인 청각장애를 앓으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끝없는 창작욕을 불태운 그는 위대한 음악가이기 전에 시련에 굴하지 않는 위대한 인간이었다. 둘째, 수많은 여인들과 뜨거운 염문을 뿌린 당대의 호남아였지만, 정작 결혼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두고두고 사랑했던 '불멸의 연인'이 누구였을지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추측을 거듭하고 있다. 셋째, 지독한 건망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루는 베토벤의 친구가 그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인기척을 느낀 베토벤이 나와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나 베토벤의 모습을 본 친구는 기절할 것처럼 놀랐다. 그의 얼굴 전체에 허연 것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이었다.


"이보게, 자네 괜찮은 겐가? 얼굴이 도대체 왜 그 모양이야?"


그제야 베토벤은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보았다. 그리고는 씩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침에 면도를 하면서 비누거품을 발라놓곤 그만 잊었군."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그의 인생을 더듬으면서 불쑥 이런 에피소드를 먼저 꺼내는 것은 그의 일생이 비교적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며, 아울러 음악가를 음악이 아닌 글로 설명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1770년 12월 17일 요한 판 베토벤과 마리아 막달레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플랑드르 출신으로 할아버지 때 본에 정착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쾰른 대주교 선제후의 궁정 합창단의 음악감독이었고 아버지 역시 궁정 합창단의 가수였다. 18세기에 흔히 볼 수 있던 음악가 가문이었다. 그러나 1773년 할아버지가 죽고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서 가문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열한 살이 되던 해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고, 열여덟 살부터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베토벤은 처음 아버지 요한에게서 음악을 배웠다. 흔히 요한이 가혹하게 그를 교육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에 대한 확실한 기록 증거는 없다.


1823년의 베토벤, 게오르크 발트뮐러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challea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