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아시아 청소년음악협회(AYMA) 창설멤버로 아시아 각국을 순회하며 지도 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같은 해에는 국내 최초로 김남윤 교수와 함께 음악캠프를 시작, 젊은 음악영재 발굴의 길을 열어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왔다.

1978년에는 ‘서울무지카트리오’를 창단하여 한국음악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등 실내악 운동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1988년 서울첼리스텐 앙상블을 조직하여 서울국제음악제를 비롯한 일본 무대에서의 교환연주와, 2000년부터 100인의 대규모 첼로오케스트라를 조직, 지휘하는 장대한 연주는 그의 개척과 실험정신을 평가받는 기획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의 연주적 특징은 첼로 특유의 깊은 음색에 자신만의 농익은 연주기법이 더해져 정신의 심연에 깊은 울림을 전달하는 명연을 들려주는데 있다. 1987년 녹음된 그의 ‘첼로명곡의 산책’은 지금도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1979년 한국음악팬클럽상, 1988년 한국음악평론가 협회상, 1993년 한국음악협회의 한국음악상을 수상했고, 2000년 창설한 한국첼로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1960년대부터 경희대, 한양대를 거쳐 최근에는 중앙대학 음대 학장으로 재직하며 후학을 길러왔다.

◆한국 첼로계의 '거목'=나 교수는 '한국 첼로계의 1세대'로 불린다. 독일 쾰른 국립음대를 졸업하고 1974년 귀국, 한양대에서 다음 세대를 기르기 시작한 지 올해로 34년이다. 홍 교수는 중학교 2학년 시절 막 귀국한 나 교수를 찾아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 첼로를 하려면 무조건 나덕성에게 가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후 홍씨는 줄리아드 음대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대표적인 첼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서울시향 단원인 서광욱(53)씨, 연주자 송희송(45)씨 등도 나 교수가 길러낸 첼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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