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여성 첼리스트인 자클린 뒤 프레는 1945년 1월 26일 장교 아버지와 음악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부터 어머니가 편곡한 동요 악보를 가지고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뒤 프레는 11세에 영재 발굴을 위한 한 재단의 오디션에 참가해서 비발디와 생상스, 보케리니 등의 작품을 연주했고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존 바비롤리(John Barbirolli)의 극찬을 받았다.

이후 우수한 성적으로 길드홀 음악원에 입학했으며, 1961년 3월 1일 위그모어 홀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열었다. 이날 연주 도중 A선이 풀리는 바람에 연주를 중단하는 해프닝을 겪었지만 흔들림 없이 연주를 이어가며 성공적으로 첫 연주를 마쳤다.

열여섯 살의 나이로 샛별처럼 등장한 자클린 뒤 프레는 탁월한 재능과 연주력에 매력적인 외모까지 겸비한 첼리스트로 단숨에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1962년 BBC 심포니와 엘가의 〈첼로 협주곡 e단조〉를 협연한 무대는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며 뒤 프레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언론에서는 “현재도 빛나는 첼리스트이자 이제 곧 더 유명한 첼리스트가 될 재목”이라며 스타의 탄생을 예고했다.
1965년 스무 살의 나이로 뉴욕에 진출한 자클린 뒤 프레는 오래 전 영재 오디션에서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았던 존 바비롤리의 지휘로 BBC 심포니와 15회의 순회공연을 가졌다.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만남 연주자로 한창 주목받던 1966년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자리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을 만나 열렬한 연애 끝에 이듬해 6월 15일 결혼식을 올리며 슈만과 클라라에 이은 최고의 음악가 부부 탄생을 알렸다. 뒤 프레와 바렌보임 부부는 음악적으로도 최고의 파트너였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과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를 비롯해 여러 작품을 함께 연주하고 녹음한 음반은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남아있다. 또한 뒤 프레 부부와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Itzhak Perlman), 비올리스트 핀커스 주커만(Pinchas Zukerman) 등이 함께한 슈베르트의 5중주 〈송어〉 연주 역시 길이 남는 명연주로 기억되는데, 특별히 이날 콘트라베이스는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주빈 메타(Zubin Mehta)가 맡았다.

그러나 연주자로 전성기를 구가할 무렵 찾아온 다발성 경화증은 그녀의 음악 인생에 제동을 걸었다

증세가 심해지면서 연주가 불가능해지자 은퇴를 선언한 뒤 프레는 1987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부쩍 건강이 나빠졌다.

이후에는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전기를 쓰고 손님들에게 자신이 연주했던 음반을 들려주면서 말년을 보내다 1987년 마흔둘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이혼했지만 다니엘 바렌보임이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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