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시렁거리기...^^

넥센의 김 병현

또하심 2012. 2. 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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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김의 야!토크!] 김병현, 100억을 거절했던 이유
야구선수 김병현은 11년이라는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오르기도 하였고 2002년에는 올스타 경기에 뽑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미국 생활이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쓰라린 방출도 경험했고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한때 독립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하지만 최고의 야구선수들 속에서 그는 자기의 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그의 결정과 방식이 항상 정답은 아니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며 자기만의 인생철학을 가진 야구선수이다.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BK가 야구선수로서 가진 매력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005년 시즌 콜로라도 로키스를 지휘했던 클린트 허들 감독이 남긴 한 마디가 보여주듯 야구선수 김병현은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을 갖고 있는 선수이다. 그렇다면11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이 나올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 그의 옆을 지켜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정리해봤다.





에피소드1. "100억을 거절했던 BK"

2003년 시즌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김병현은 보스턴 레드삭스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고 있었고 포스트 시즌 진출을 코앞에 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갑자기 울린 전화벨. 다름 아닌 당시 구단과의 협상을 진행하고 있던 에이전트인 제프 무라드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Where is BK?" (BK 지금 어디 있는가?)

목소리에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트레이드 데드라인도 지났고 당시 성적 또한 좋았다. 특별한 사건(?)이 있을만한 시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 그가 하던 안부전화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그는 차분하게 당시 급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막 엡스타인 단장과 전화를 끊었다. 팀이 2년 계약을 제시했다. 총 액수는 2년 합친 연봉만 천만 불이다." 예상치 못하고 있었던 소식이었다. 그리고 급하게 김병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쁜(?) 소식을 전해 들은 김병현의 반응은 뜻밖에 차분했고 한마디로 시큰둥하였다. 당장 계약하겠다는 대답을 예상했는데 오히려 그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당시 그의 나이 25살. 불과 몇 년 전 '헬로우' 와 '하우 아 유' 정도의 영어실력으로 글러브만 들고 태평양을 건넜던 그에게 10억도 아닌 10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 앞에서 그는 조금도 흔들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주위 사람들을 또 놀라게 했다. 장기 계약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구단과 협상을 주도했던 에이전트 무라드 또한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유인즉,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의 감독은 그레이디 리틀이었다. 리틀 감독은 공식적으로 '마무리 투수는 BK이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정작 불펜 운영방식은 그렇지 못했다. 실제로 9회에 좌 타자가 나오면 알랜 엠브리를 마운드에 올리곤 했다. 자기를 믿지 못하는 감독 밑에서 야구하기가 싫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엡스타인 단장은 끈임없이 구애를 보내며 김병현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였고 결국 보스턴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김병현 선수 팬이라면 다들 한 번쯤 꼭 생각해보는 것이 있다.

"만약 김병현이 마무리로 계속 활약했다면 어땠을까?"

본인도 선발 욕심을 버렸다면 안정적으로 선수생활을 할 수 있고 수입 또한 어느 정도 보장될 것이라는 것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돈이 그에게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에피소드 2. "나 같은 선수도 버티고 있는데……"

야구선수 김병현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하나가 바로 팀메이트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어 장벽이 있다 보니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동료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꽤 인기도 있었고 젊은 투수들은 그를 많이 따르기도 했다.

2005년 콜로라도 로키스 선수 전용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김병현은 끝내기 안타를 내주고 혼자 풀이 죽어 선수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어느 한 신인 투수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선수도 있는데…… 오늘 경기 잊어버리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하면 돼."

예상치 못했던'선배'의 따뜻한 한마디에 신인선수 입가엔 잠시 미소가 보였고 그렇게 그날 저녁은 마무리 되었다. 야구선수에게 가장 큰 무대인 월드시리즈에서 홈런 3개를 아주 극적으로 내준 선배가 괜찮다는데 더는 말이 필요 있겠는가? 때론 자신의 아픈 과거(?)를 돌이키며 후배를 위로하는 야구선수가 바로 김병현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로키스 불펜 투수 중 최고 고참이 바로 김병현이었다는 것이다. 보스턴과 아리조나에선 아저씨 같은 고참들 속에서 생활해야 했지만, 콜로라도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불펜에 투수들은 그를 최고의 고참으로 깍듯이 대우해줬고 물론 김병현 또한 그들에게 마음을 열며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특히 원정 중 불펜투수들을 위해 회식을 하며 팀워크를 다지기도 했다. 물론 계산은 최고 고참선수가 해야 했다.

에피소드 3.

"아이…… 왜 하필이면 밀워키야?"

2001년 올스타 경기 초대를 받은 직후 김병현의 한마디였다.

그 해 올스타 경기는 브루워스의 홈구장인 밀워키 밀러파크에서 열렸다. 참고로 코리언 메이저리거들에게 밀워키는 최악의 원정지로 꼽히는 곳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식당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메이저리그 도시이기 때문이다. 올스타 기간 동안 김치를 먹을 수 없다는 게 매우 짜증스럽다는 그의 빈정거리는 한마디에서 묘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 예정일 3일 전, 밀워키 피스터 호텔은 최고의 MLB 스타들로 북적거렸다. 이치로는 호텔 로비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고, 엘리베이터에서는 마이크 피아자가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인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걸어 나오고 있었고, 랜디 존슨은 신문을 사고 있었다. 스포츠 전문 방송국인 ESPN과 CNN은 아예 위성트럭을 호텔주차장에 배치 시켜놓고 있었다. 그 때 호텔로비에 나타난 김병현은 더는 편할 수 없을 것 같은 캐주얼 차림에 "올스타가 뭐 별거냐"는 듯한 무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명예의 전당에 헌납된 대선배들, 그리고 우리 세대 최고의 스타들 앞에서 그는 기가 죽기는커녕 만화가게에 짜장면을 시켜 먹으러 온 겁 없는 초등학생처럼 당당했다.

야구선수 김병현의 트레이드 마크는 단연 자신감이다.

주위엔 김병현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자칭"야구 전문가"들이 꽤 많다.

"인성이 부족하다", "욕심이 많다", "고집이 너무 세다"…… "야구계의 악동이다"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엔 다 비슷한 말들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소심하고 고집이 없었다면 덩치 큰 메이저리거들을 삼진으로 잡을 수 있었을까? 아마 마운드에 서기는커녕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마운드에서 자신이 최고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원동력이 바로 그 착각이 아닐까?

이젠 한국프로야구가 그의 무대가 되었다. 과연 그가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지 기대가 된다.

그리고"BK가 없었다면 2001년 우리는 우승할 수 없었다."고 전 아리조나 단장 조 가라지올라이 말했던 것처럼 그를 직접 스카우트했던 이장석 구단주가 비슷한 말을 하게 될지 무척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