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다 만, 찝찝한 경기였다. 전반 38분까지는 우즈벡에게 동정과 연민이 생겼다. 이후엔 동정과 연민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향했다. 3위로 대회를 마무리 지으며 다음 대회 자동 진출권을 획득했지만 대한민국의 레전드(레전드가 하나가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가 떠나는 경기였음을 감안했을 때 조금 더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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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원
구자철 이용래 기성용 이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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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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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황재원 이정수 차두리
정성룡
골 : 구자철(전17) 지동원(전28) 지동원(전38) 게인리흐(전45, 후8)
교체 : 구자철↔윤빛가람(후7) 이청용↔손흥민(후15) 홍정호↔곽태휘(후33)
나프카로프↔살로모프(후31)
1. 이겼지만 개운함이 부족했던 경기, 전반적인 흐름은 어땠나.
먼저 전체적인 경기의 흐름을 짚어보자. 전반 초반, 양 팀은 최전방에서부터 굉장히 강한 압박을 가했다. 4-1-4-1을 기본 시스템으로 나선 대한민국은 공격 시에 양 측면 미드필더까지 높은 선으로 올려 3톱(구자철-지동원-이청용)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적극적인 압박을 시도했다. 게다가 중앙에 위치한 이용래-기성용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던 지난 경기들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지역까지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줬다. 역습을 통해 터진 구자철의 첫 골 과정은 이용래가 맡았던 역할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라고 묻는다면
이보다 더 최선일 수 있냐고 되묻고 싶다. 놀라웠다.
4-1-4-1 중 전방에 위치한 선수들이 때로는 4~5명씩 앞으로 전진하다보니 자연스레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던 홍정호가 홀로 막아내야 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우즈벡이 공격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진영으로 많은 숫자를 투입시키지 않아 큰 위기는 없었지만 가끔씩 수비 앞의 공간을 너무 많이 내주며 중거리 슛팅을 허용했다. 하지만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굉장히 공격 지향적인 경기를 했고 그 결과 전반 38분에만 3골을 몰아치는 매서운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후반 8분, 전반전 말미에 내준 PK실점에 이어 두 번째 실점을 하자 이용래-기성용으로 이뤄진 중앙 미드필더들이 밑으로 내려가 조금은 지키는 경기를 했다. 후반 초반 체력적인 문제를 생각해 구자철 대신 윤빛가람, 이청용 대신 손흥민을 넣었고 후반 33분에는 홍정호 대신 곽태휘를 넣으면서 플랫 3로 전환하는 모습도 보였다. 3-0으로 앞서면서 우즈벡에게 동정과 연민이 생길 정도였지만 언제부턴가 한 골만 더 실점하면 3경기 연속 연장전으로 간다는 부담 탓에 지켜야하는 처지가 됐던 것이 보는 입장에서는 달갑지만은 않았다.
후반으로 가면서 보였던 가장 큰 특징은 극심한 체력 저하였다. 볼 터치를 최소화한 패스 플레이, 생각의 속도를 최소한으로 줄인 플레이, 그리고 끊임없는 포지션 스위치를 이뤄낸 플레이는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줬지만 그 반대 급부로 선수들은 체력적인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해결책으로 꼽혔던 써브 자원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점도 이번 대회를 힘들게 이뤄낸 이유 중 하나였다. 이 부분에서는 아시안 컵 결산 글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뤄볼까 한다. 어찌됐든 3위로 대회를 마친 대표팀에게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박수를 보낸다.
2. 또 한 번 내준 PK, 냉철하게 되돌아 볼 문제.
경기가 끝나자마자 <황재원 해도 너무 했다.>라는 기사가 올라오더라. 보통 경기 후에 관전평을 작성하기 전까지는 개인적인 생각이 바뀔 것을 우려해 인터넷에 뜨는 기사를 잘 클릭하지 않는 편인데 그런 나까지도 그 제목을 클릭하게 만들었던 그 기자 분의 능력에 감탄했다. 내용? 예측 가능하다시피, 그리고 아시다시피 양질은 아니었다.
반칙? 하아 글쎄.
그런데 한 두 번도 아니고 자꾸 불어대니 우리가 변해야지 어떡하나.
지난 경기에 이어 또 한 번 PK를 내준 황재원이었다. 전반전에 3골을 몰아넣으면서 대승으로 가는가 싶었지만 갑자기 내준 PK실점이 고춧가루를 팍팍팍팍팍 뿌렸고 결국 3-0에서 3-1, 그리고 손흥민의 추가골로 4-1로 승리했던 인도전 페이스를 따라가는 듯 했다. 승리를 했지만 그 승리가 개운하지 못했다는 것, 경기를 보신 분들 모두 공감했으리라.
이번 대회에서는 유독 PK실점이 많았다. 7골 중 무려 4골을 PK로 실점했는데 곽태휘와 황재원이 누구 하나 앞서지 않고 사이좋게 나란히 2개씩 내주는 의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심판의 판정이 석연찮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6경기동안 무려 4개의 PK를 내줬다는 점은 냉철하게 되돌아 볼 문제다. 곽태휘, 황재원 모두 K리그에서 많은 시간을 뛰었던 베테랑 선수들이다. 온,오프라인상에서 K리그를 접하는 분들이면 아시겠지만 K리그 주심들 PK선언에 굉장히 인색하다. 웬만해서는 휘슬을 잘 불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계속 손을 쓰고 덮치고 무리한 파울을 하는 습관이 이 수비 선수들 몸에 밴 게 아닌가 싶다.
이번 대회 무실점 경기가 8강에서 만난 이란전 단 한 경기에 불과했다는 점에는 어이없이 내 준 PK가 한 몫 단단히 했다. 전현직 K리그 출신이 센터백 라인을 이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회에서 내준 4번의 PK골은 주심만을 탓할 게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도 국외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되돌아 볼 필요성이 분명히 있다. 페널티 박스 내에서 무리한 몸동작 이후 휘슬 울리고 난 후 <이게 파울이에요?>라는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양 어깨 들썩이며 주심을 쳐다봐도 판정은 번복되기 힘들다. 애초에 그런 상황 초래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3. 오늘도 빛난 Made in K리그, 구자철 그리고 지동원.
Made in K league.
자국 리그 발전 없이 대표팀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공격진에서는 오늘도 빛났던 Made in K리그였다. 이 선수들, 자비란 없었다. 상대방 골대에 볼을 팍팍 꽂아넣었다.
지동원은 최순호 세대가 아닌 황선홍 세대의 필자에겐 기존의 스트라이커와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해줬다. 지동원은 골도 골이지만 가끔씩 맞는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혼자서 만들어가려는, 원톱에게 요구되는 움직임을 정말 훌륭히 수행해냈다. 비록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했던 경기라 당장 이 선수의 기량이 완성됐다고 평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앞으로 유럽의 큰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박주영이 돌아왔을 경우 아시안 게임에서 보여줬던 상생 관계가 대표팀 내에서도 터져나오길 기대해본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면 기존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지동원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대표팀과 리그에서 잘하는 건 좋은데 필자가 지지하는 팀과 경기할 때는 적당히 하라는 것이다. 2010년, 전남이랑 붙을 때마다 지동원이 볼을 잡으면 식겁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 올해는 얼마나 성장해서 무서운 모습을 보여줄 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리고 제주가 낳은 구자봉, 구자철. 5골 3도움을 기록한 그는 3골을 넣은 차순위 경쟁자들을 여유있게 따돌리며 유력한 대회 득점왕으로 자리잡았다. 호주-일본전에서 차순위를 달리는 선수들이 해트트릭을 기록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다고 보기도 힘들지 않을까. 이번 대회를 거치며 자신의 가치를 유감없이 보여 준 구자철, K리그에 남는다면 흥행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이제는 더 큰 무대로 나갈 시기인 것 같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영보이스는 그를 담을 큰 그릇이 못 된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그의 플레이에서 라벤더향이 나는데 무슨 놈의 영보이스냐.
4. 굿바이.
영원히 사랑한다.
굿바이.
경기가 끝난 후, 카메라는 은퇴를 시사한 이영표를 계속해서 잡아주었다. 왼쪽 측면=이영표라는 것을 일종의 공식으로 알고 축구를 보면서 자라온 나로서는 그저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축구의 왼쪽 측면은 변함 없이 꾸준했던 것 같다. 그 근원에는 안양 - 아인트호벤 - 토트넘 - 도르트문트 - 알 힐랄을 거치며 월드컵 3회 연속 출전, 그리고 127경기로 통산 A매치 최다 출전 3위에 오른 이영표가 있었다. 앞으로 그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날이 없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질 않는다.
1977년 생, 올해 나이 35살인 이영표를 바라보면서 시간이 이토록 빨리 흘렀나 싶다. 나이 타령할 건 아니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또 하나의 레전드와 이별할 때가 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머나먼 카타르에서 마지막 경기를 했다는 것인데 기회가 된다면 서울이 됐든, 수원이 됐든 국내에서 열릴 A매치에서 단 1분이라도 뛰면서 은퇴 경기를 가지면 어떨까 한다. 2002년 11월, 황선홍과 홍명보처럼 말이다. A매치 70경기 이상을 뛰었기에 은퇴식은 거행하겠지만 그래도 선수로서의 마지막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비단 나뿐만이 아닌 많은 팬들이 바라고 있지 않을까.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대회였다. 경기를 지켜보며 때로는 답답하고 화도 났지만 그래도 참 열심히 뛰었는데 누굴 욕할 수 있겠는가.
아시안 컵, 우승이 참 힘들다. 선수 개인적인 면면을 따지자면 아시아의 왕임에 틀림없지만 결국엔 팀으로서 성적으로 직접 증명해서 보여 줄 문제다. 대회 전에 내걸었던 <왕의 귀환>은 실패했지만 그 가운데에서 얻은 가능성과 희망도 있다. 부디 우리가 확인한 가능성과 희망이 앞으로의 국제 대회에서 빛을 볼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이런 대회, 확 우승해버리면 모두가 좋지. 그런데 그럴 정도가 안되는 걸 어떡하나. 언제까지 가능성, 희망 운운할거냐고? 우승해서 진정으로 왕의 귀환 주장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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