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자전거 도로와 유래

또하심 2008. 5. 4. 01:28
자전거를 보면 그 사람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선뜻 느껴진다.
조금 못생겼지만 기능적인 튼튼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리트로의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하는 사람들, 아주 심플한 기본 기능만을 가진 저렴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요란한 색상으로 장식이 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그리고 기능과 디자인 모두 최고를 달리는 비싼 명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 모두 저마다의 색을 자전거에 입히고 거리를 활보한다.



일본처럼 교통비가 비싼 나라에서 자전거는 필수품목이다. 운동도 되고 교통비는 무료이다. 교복을 입고 등하교하는 일본 학생들의 행렬도 종종 눈에 띤다.

중국인들에게 자전거는 중요한 교통수단 중 하나임과 동시에 자전거를 이용한 갖가지 화물운송을 고안하여 삶의 편리함을 추구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야 하기에 자전거용 우비도 색색가지로 구할 수 있다.

해마다 벨기에에서는 자신의 자전거를 캐릭터 상품으로 둔갑시켜 행진하는 축제도 있고 유럽에서 자전거를 가장 많이 탄다는 독일인들은 자전거 위에서 기타도 치고 잎담배도 능숙하게 만다고 한다.

갖가지 개성을 존중하는 네덜란드의 자전거들은 그 주인 만큼이나 특이한 장식을 하고 있거나 화려한 색으로 덧칠해져 있다. 또한 화해나 사랑을 전할 때 상대의 자전거에 몰래 예쁜 꽃을 달아 놓아 자전거를 통한 정을 나누기도 하며 개방적이고 가장 먼저 개혁적인 그들답게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자전거 타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가족 만들기 붐을 새로이 맞은 프랑스인들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로 자전거를 많이 선택하며 어린이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어린이용 헬멧과 무릎 보호장치 등을 꼭 준비한다. 젊은 유럽인들의 경우 자전거를 통한 격렬한 스포츠도 많이 즐기는데 산악 자전거로 모험을 떠나거나 텐트와 생필품을 가지고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

서울·수도권
아름다운 자전거 도로


서울 숲



자전거 산책로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성수동에 위치한 서울 숲이다.
뚝섬 생태 숲, 자연 체험 학습장, 수많은 자전거 오솔길들과 한강 공원으로 이어지는 긴 산책로는 나무들과 함께 숨쉬며 운동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숲 안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데 1시간 당 3000원이며 2인용 자전거는 6000원이다. 대여소에는 물품보관소도 마련되어 있다. 지하철 2호선 뚝섬 역 8번 출구에서 도보로 15분 거리.

홍제천

서울 서대문구, 홍연교와 홍남교 사이 구간의 홍제천은 조용한 주말 조깅이나 자전거 산책으로 이상적인 곳이다. 홍제 3교와 사천교 사이에 아름다운 봄 꽃들과 해바라기를 심어 아름다운 꽃 길을 감상하며 자전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중랑천

서울 노원구의 중랑천 동측 하천 둔치에 위치한 노원교와 녹천교 구간, 중랑구의 중랑천 동측 뚝방에 위치한 크라운제과와 이화교 구간 그리고 풍림아파트와 장안교 구간.

오이와 철새들이 많으며 버들 강아지, 억새풀, 제비꽃, 유채꽃, 냉이꽃, 민들레 등이 가득해 로맨틱한 자전거 산책로이다.

양재천

서울 강남구 양재천 양측 둔치에 위치한 탄천 1교와 영동1교 구간은 사방에 봄꽃들이 만발하다. 얼마 전엔 수리부엉이와 너구리가 출현하였고 학여울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날로 깨끗해져 가는 한강의 생태 환경을 감상하기 좋다.

또 양재천 한강 자전거 도로는 탄천 뿐 아니라 안양천, 중랑천, 홍제천으로 모두 연결되어 장거리의 자전거 산책과 출퇴근도 가능하다.

올림픽공원

아름다운 숲과 조각품이 어우러진 올림픽 공원은 자전거 산책으로도 아주 이상적인 곳이다. 나무들로 들어 찬 숲과 계절마다 바뀌는 꽃들을 감상할 수 있게 꾸며진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으며 올림픽 공원 광장에서 자전거 대여도 가능하다.

강북강변 둔치길

가장 깨끗한 한강변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주말에도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한가한 분위기에서 자전거를 가족들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가양대교에서 원효대교 사이, 편도로 약 10km, 40분이 소요되는 구간으로 특히 가양대교 북단에서 홍제천교로 이어지는 구간은 시골길을 달리는 듯한 기분을 만끽 할 수 있으며 월드컵 공원 등으로도 자전거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올림픽대로 둔치길

행주대교에서 여의도 시민공원 구간으로 편도 13km, 약 1시간을 소요하는 거리이다.
전체 구간이 대부분 굴곡이 없이 경사가 완만한 곳으로 어린이들과 함께 도로에 나서도 완주 할 수 있는 수월한 구간이다.

양화 선착장 주변에는 물기둥을 뿜어내는 월드컵 분수대와 선유도 공원까지 둘러 볼 수 있다.

■ 자전거 대여점 운영 (761-7468)
ㅇ 이용시간 : 09:00~일몰전
ㅇ 이용요금
- 1인용 시간당 3000원 / 15분 초과마다 500원
- 2인용 시간당 6000원 / 15분 초과마다 1000원
ㅇ 자전거 수량 : 2200대 (아동용, 성인용, 2인용 등)
ㅇ 대여장소 및 연락처
- 강북지역 (4개소): 뚝섬(011-9161-7675), 이촌(019-313-0062), 망원(011-9635-9188), 난지(011-276-7675)

- 강남지역 (8개소): 광나루(018-221-7551), 잠실(019-305-5067), 잠원(011-9005-7858), 반포(011-9161-7675), 여의도 원효대교밑(019-313-0062), 여의도 수영장앞(011-9635-9188), 양화(011-276-7675), 강서(019-305-5068)

* 자전거는 대여한 곳 뿐 아니라 타 지역으로의 반환도 가능
서울시청 자전거지도 웹사이트
http://210.90.46.226:4545/index_main_test.asp
【 자전거의 추억 】



그 여름 방학 내내 아버지께서는 자전거를 가르쳐 주셨었다.
자전거 안장을 뒤에서 잡고 있으니 안심하라시며 페달을 밟고 중심을 잡아 앞을 향해 나가라시던 그 믿음직한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아빠, 놓으면 안돼! 꼭 잡고 있어야 해!" 뭐가 그리 불안했었던 건지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가며 조심스럽게 페달을 밀어 차던 어린 시절, 해질 녘 시작한 자전거 타기 연습은 캄캄한 밤이 되도록 끝날 줄 모르고 넘어질까 두려워 하며 땀에 흠뻑 젖어 자전거 위에 가까스로 앉아있었지만 그 시간들은 참으로 행복했었다.

아버지의 든든한 어깨가 나를 감싸서 든든했고 땀이 밴 셔츠를 벗어내고 깨끗이 목욕을 한 후 이부자리에 들면 곧바로 깊은 단잠에 빠지는 여름 밤 노곤함이 기분 좋았다.

며칠이 지났을까 아버지와 여전히 자전거 연습, 뒤에서 들려오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어느 샌가 손안에 중심을 잡는 기운이 느껴지자 자전거 타기 성공! 이 세상을 다 얻은 듯 자신이 그렇게 뿌듯하게 여겨진 적이 이전에 또 있었을까?

아마도 처음 느껴본 스스로를 향한 대견함이 아니었을까? 이후로 자전거는 제일 친한 벗이자 보물 1호가 되었고 친구들이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었다.

페달이 부드럽게 안정적으로 밟히며 앞으로 나가던 자전거, 자전거가 데려온 시원한 바람은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들을 모두 사라지게 하고 부드러운 바람과 어느덧 하나가 되며 이 세상 끝까지라도 계속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자전거의 역사 】



이륜차가 달린 것을 자전거의 기원으로 본다면 자전거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1790년 프랑스의 콩트 드 시브락(Conte de Sivrac)이라고 알려져 있다. 2개의 나무 바퀴를 이용해서 달릴 수 있는 이것은 바퀴를 전후로 배열하였던 점이 훌륭한 발상이었다.

이때의 이륜차는 빨리 달리는 기계라는 뜻을 가진 셀레르페르(Celerfere)라 불렸다.
이후 1818년 독일의 칼 바론 빈 드라이스(Karl Baron von Drais)에 의해 발명된 자전거 드라이제(Draise)도 현재의 자전거와는 거리가 멀지만 최고 속도가 15km였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두 바퀴 사이에 안장을 올리고 핸들과 페달 없이 좌우 발로 번갈아 땅을 치며 나아가는 이 주행기는 비탈길을 달리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또 한가지 주장은 1817년 바롱 드래스 본 소에르브롱(Baron Drais von Sauerbronn) 남작이 발명한 드레지엔느(Draisienne)에서 시작한다.

나무로 만든 이 기계는 사람이 발로 땅을 밀어 움직이는 원리로 볼품은 없었지만 방향조절이 가능했다. 이후 1819년 영국인 데니스 존슨(Denis Johnson)이 드레지엔느의 틀과 바퀴 등을 강철로 만들었고 1839년 스코틀랜드의 대장장이 맥밀런(McMillan)이 4년간의 실험으로 사람의 힘으로 추진되는 자전거를 만들어 냈고 1842년 이 차가 역마차와의 경주에서 이겼다.

1861년에 이르러 프랑스 피에르와 에르네스트 미쇼(Pierre & Ernest Michaux) 부자에 의해 오늘날 자전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페달이 달린 모델이 탄생된다. 앞 바퀴는 엄청나게 크고 뒷바퀴는 작은, '뼈 흔들기'라는 별명을 가진 벨토시페드 자전거가 등장하고 1862년 독일 뮌헨에서 이와 같은 자전거가 142대 만들어졌다. 1885년 영국에서 상업적으로 최초의 성공을 거둔 안전자전거 '로버'가 등장, 이 자전거는 앞 뒤 바퀴의 크기가 같고 다이아몬드형 프레임을 채택했으며 체인 구동식으로 당시 자전거 붐을 일으켰다. 이것을 자전거의 제 1혁명이라 부른다.

이후 1886년 던롭(Dunlop)사는 공기 타이어를 발명해 자전거의 사회적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데 기여했는데 이때가 자전거의 제 2혁명기이다.

자전거는 말과 달리 지치거나 먹이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는 이유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자동차의 급증으로 수요가 잠시 주춤하게 되었다가 이후 2차 세계 대전 이후 휘발유 부족으로 잠시 인기를 되찾으면서 올림픽 경기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현재에 와서는 공해문제와 연료부족, 건강 등에 관한 관심이 새롭게 부각되어 다시 그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에는 개화기 이후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1896년 고희성이 처음 탔다는 주장도 있고 1896년 서재필 박사가 독립문 신축 현장 때 처음 탔다는 설도 있다.

이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전거를 보고 '괴물 차', '나르는 새' 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일제시대 우리나라 엄복동 선수가 일본선수들을 누르고 국내 각종 경기에서 우승을 했으며 1950년까지 부품제작만을 하던 우리나라는 5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자전거 생산을 시작, 현재는 자전거 주요 생산국 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