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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음악의 아버지, 바흐에 대한 일화 몇 토막

또하심 2006. 10. 26. 07:35

바흐는 왜 합창단 학생들로부터 뭇매를 맞았을까?



  1703년 18세가 된 바흐는 고향인 튀링겐 지방에 새로 생긴 아른슈타트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 일하게 된다. 그는 여기에서 반주와 오르간 정비는 물론 예배음악 작곡과 합창단 지도까지 맡았다. 수준 높은 음악을 도입하려고 강훈련을 시키는 바흐가 합창단에 속한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때려주고 싶도록 미웠을 것이다. 실제로 바흐는 연주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학생들로부터 습격을 받았고 성직자 회의에서도 몇 번씩이나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가 아른슈타트 교회를 떠나는 결정적 계기는 여성인 ‘마리아 바르바라’를 성가대 석상에 앉혀 노래하게 한 사건이다. 그 당시 교회 성가대에는 여성의 입장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발적으로 성가대석에 앉혔던 마리아 바르바라는 훗날 바흐의 부인이 되는 그의 사촌 누나였다.



흥부, 세종대왕 그리고 요한 세바스찬 바흐


  “스물다섯 되는 자식 다른 사람 자식 낳듯 한 배에 하나 낳아 삼사 세 된 연후에 낳고 낳고 했어야 사십이 못다 되어 그리 많이 낳겄느냐. 한 해에 한 배씩 한 배에 두셋씩 대고 낳아 놓았구나...” 흥부전에 나오는 흥부의 스물다섯 자식타령이다. “정비인 소헌왕후 심씨 소생 적자가 8남, 적녀인 공주가 2녀, 후궁의 서자가 10남, 서녀인 옹주가 2녀...” 해서 합이 스물 둘, 다름 아닌 세종대왕의 자식들이다. 흥부는 한 아내에 스물 다섯이요 세종대왕은 여섯 아내로부터 스물 둘이니 자식 많이 낳기로는 흥부가 단연 앞선다.

 

  구전되어 오던 소설 속의 가공인물도 일국의 임금도 아니었던 음악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 그에게도 스무 명의 결코 적지 않은 자녀가 있었는데 첫 아내였던 사촌누이 바르바라와의 사이에서 13년간 7명, 그녀가 죽고 난 이듬해 두 번째로 얻은 아내 안나 막달레나로부터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니 아내 1인당 자식 수로는 세종대왕보다 단연 앞선다. 흥부의 자식 스물다섯이 나중에 자라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세종대왕의 경우는 1남과 2남이 각각 문종과 세조로 왕위에 올랐지만 나머지 자식들은 모두 무슨무슨 ‘군’ 아니면 공주, 옹주로 생을 마감했다.

 

  바흐의 자식들은 어떠한가.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1710~1784), 차남 카를 필립 에마누엘(1714~1788), 막내 요한 크리스티안(1735~1782) 등 3명은 음악사에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차남 에마누엘은 '함부르크의 바흐', '베를린의 바흐'로 막내인 크리스티안은 '밀라노의 바흐', '런던의 바흐'로 일컬어질 정도로 전 유럽에서 활약하면서 그들의 아버지이자 음악의 아버지인 대바흐와 헨델을 정점으로 하는 바로크 음악에서 하이든·모차르트의 빈 고전파로 음악사를 크게 전환시켰으니 무릇 자식은 숫자만으로 자랑할 일은 아니다.



라 단조 토카타와 푸가, 그 완벽한 모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의 음악을 일일이 소개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지면이 모자랄 것이니 여기서는 대표작만 언급해 보기로 하겠다. 바흐가 쾨텐궁정에서 연주되었던 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만을 골라 당시 브란덴부르크의 통치자였던 루트비히 공에게 헌정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당시에 등장한 모든 악기를 동원해 풍요롭고도 오묘한 느낌이 가득한 바로크 음악의 최고봉으로 평가된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피아노 교육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교재로 평가되는 그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아들과 제자들을 위한 교육용으로 작곡한 것으로 건반음악 사상 비교할 수 없는 예술적 가치를 지녀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라 불릴 정도이다.

 

  그 뿐인가. ‘나 단조 미사곡’ ‘요한 수난곡’ ‘마태 수난곡’ 등 그가 남긴 교회음악은 동서고금을 통털어 종교음악의 걸작이라 불린다. 그러나 바흐가 이 모든 곡들을 탄생시킨 음악적 틀을 쌓았던 시기는 합창단 학생들에게 뭇매를 맞았던 바로 그 아른슈타트 교회에서 일하던 청년기였다. 그가 오랫동안 열망했던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서 당시로서는 최고로 성능이 좋은 오르간을 연주하며 대가들의 작품을 필사적으로 연구한 끝에 마침내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했으니 그 결과물이 바로 라 단조 ‘토카타와 푸가’이다. ‘토카타’란 풍부한 화음과 빠른 단락을 구사해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함을 나타내는 건반악곡을 말하며 ‘푸가’는 같은 주제를 여러 소리 또는 악기로 연주하는 일종의 돌림노래 형식으로 바흐의 라 단조 ‘토카와 푸가’는 가장 음악사에 있어서 이를 가장 완벽하게 모범 보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곡을 들으면 바흐의 음악을 절반은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오르간으로 연주되는 이 곡은 관악기로만 구성된 ‘브라스 협주’로 들으면 그 맛이 더욱 새롭고 심지어 반주가 없는 아카펠라로 연주해도 감동이 배가된다. 여기에다 그 유명한 ‘음악의 헌정’‘무반주 첼로모음곡’을 빼 놓는다면 바흐의 후손들이 항의할 것이다. 아, 참 그러고 보니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빠졌다... 나머지는 독자들에게 맡기자.



G선 상의 아리아, Air on G String


  Orchestral Suite No.3 In D Major, BWV 1068 II. Air (관현악 모음곡 라 장조 중 제2악장의 아리아, 작품번호 1068번)... 이것이 흔히들 ‘G선 상의 아리아’라 부르는 바흐음악의 정식 명칭이다. 일화 하나... 바흐가 어느 날 자기가 살던 독일의 아이제나흐 지방으로 산책 나갔다가 소나기가 내려 어느 가난한 집으로 비를 피해 들어갔는데 그 집에는 자녀들이 많았다. 대 작곡가인 바흐를 보자 그들은 바이올린을 건네 주며 한 곡 연주해 주기를 부탁했다. 바흐가 연주하려고 바이올린을 보니 그 바이올린에는 G선 하나 밖에 없었다. 바이올린의 G-D-A-E 4현 중 제일 낮은 G선 만이 걸려 있고 다른 줄은 모두 끊어져 있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한 줄만 가지고 곡을 연주한 바흐는 이 곡을 'G선상의 아리아'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일화 둘... 바이올린 연주의 천재였던 파가니니가 연주회에서 이 곡을 연주하던 중 현이 모두 끊어져 G선 하나만 남게 되었는데 끝까지 이를 연주하여 그 때부터 이 곡을 ‘G선 상의 아리아’라고 부르게 되었다.

 

  듣기에 그럴싸한 이 두 가지 일화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 물론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자신의 연주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다른 현들의 음을 다 풀어놓은 채 G현 만으로 연주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파가니니의 '로시니의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Variations on a Theme from Rossini's 'Moses in Egypt' on the G String)' 같은 작품이 예가 되겠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이들도 듣고 싶은 곡을 얘기하라면 대뜸 거론하는 이 곡은 1730년 경에 작곡되었으나 100년 후 멘델스존이 지휘하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 의해서 초연되었고 1871년 당대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빌헬미에 의해 피아노 반주를 곁들인 바이올린 독주곡의 형태로 초연되면서부터 'G선 상의 아리아‘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오늘날 실제로 바이올린의 G선만으로 연주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작품에서의 Air는 프랑스어로 ‘노래’ 또는 ‘가곡’을 뜻하는 단어로 Aria의 오기가 아님을 알아두면 좋겠다.



  "그날 아버지는 나에게 처음으로 풀 사이즈의 첼로를 사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부둣가에 있는 오래된 악보(score)상점에 들렀다. 여기 저기서 많은 악보들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낡고 색이 바랜 한 묶음의 악보 뭉치를 발견했다. 그것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그 때 내 나이 열 세살이었으며 그 후 80여년 동안 그것을 처음 대했을 때의 놀라움은 생생하게 마음 속에 남아 있다. 나는 말로써는 다할 수 없는 흥분을 느끼며 이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12년간 매일 밤 그 곡을 연구하고 연습하고도 그 중의 한 곡이라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결국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연주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무려 200여년간 먼지 속에 파묻혀 있던 바흐의 걸작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를 거리의 상점에서 발견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첼로의 거장이 되었으며 또한 이 곡은 카잘스에 의해 첼로의 고전이 되었다. 바흐는 독일어로 ‘실개천’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베토벤이 평한 대로 바흐는 실개천이 아니라 음악의 대양(大洋)이 아닐까...

출처 : 아름다운 세상
글쓴이 : 선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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