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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 루마니아 1895 ~

또하심 2008. 2. 9. 16:26

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
1895년 1월7일:루마니아 부카레스트 출생, 부모는 스페인계 유태인
1899년:아버지 사망
1905년:뵈젠도르프 협회에서 솔로 리사이틀로 데뷔
1906년:파리 음악원 입학 1910년:파리 음악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
1913년:세포경화증으로 입원, 이후 8년간의 연주생활 공백
1918년:어머니 사망 1921년:연주 생활 재개
1924년:북미 연주회 1926년:영국 데뷔 연주회
1927년:파리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와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 1947년:첫 레코딩.
런던 필과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1949년:스위스 국적 취득
1956~58년:아르투르 그뤼미오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과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녹음
1960년11월:마르케비치와 모차르트 협주곡 20번, 24번 녹음
1960년12월 7일:벨기에 브뤼셀 병원에서 사망

20세기 피아니스트 대백과를 편찬한다면, 클라라 하스킬에 관한 항목은 방대하고도 결코 빠져서는 안될 항목이 될 것이다.

클라라 하스킬은 1895년 1월 7일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할까 망설이던 어린 시절 이미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처음에는 빈에서 리하르트 로베르트(루돌프 제르킨과 조지 셀의 스승이기도 하다) 문하에서 배웠고, 1905년에는 파리 음악원에 등록하여 마침내 알프레도 코르토를 스승으로 삼았다.

열 다섯 살에 나간 한 콩쿠르에서 하스킬은 알베니즈, 조르주 에네스쿠, 포레 등 쟁쟁한 인물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으로부터 1등 판정을 받았다. 이듬해 연주활동을 시작하면서 부조니, 파데레프스키 들의 찬사를 받았으나 척추 이상을 일으켜 4년 동안 무대를 떠났다가 1921년에야 다시 돌아왔다.

1927년에 파리에 정착한 하스킬은 이후 2차대전 발발 전까지 전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자리를 굳히며 때로 왕실의 사적 음악회에도 출연했고 외젠느 이자이, 에네스쿠, 파블로 카잘스 들과도 협연했다. 1942년 하스킬은 나치 치하의 프랑스에서 강제 출국당해 스위스에 망명했다. 7년 뒤에는 스위스 국적을 획득했다.

1950년 하스킬은 명성의 절정에 올라 전세계에서 연주 요청이 쇄도하는 한편 가는 곳마다 환호받았다. 이 무렵이 하스킬의 일생에 가장 행복한 기간이었는데 불행히도 연주 일정으로 이동 중 브뤼셀의 한 역에서 낙상, 1960년 12월 7일 끝내 숨을 거두었다.

하스킬의 연주가 생활 중 음반으로 남은 것은 아쉽게도 그의 생애 마지막 15년 동안에 국한되어 있다. 가장 초기의 레코딩에 속하는 것이 1940년 말 카를로 제키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 관현악단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 4번, 그리고 1950년 프라데스 페스티발에서 카잘스와 협연한 바하 협주곡 바단조들이다.

하스킬의 모짜르트, 슈베르트, 슈만의 연주에 대한 찬사는 말 그대로 아낌없는 것이었다. 가냘픈 은발의 하스킬이 피아노 앞에 앉아 무슨 곡이든 연주하기만 하면, 이를 듣는 것은 물론 작품에 몰입한 그 광경을 보는 것으로도 생생한 감동을 맛볼 수 있다.

하스킬 연주의 빼어난 점은 어디 있을까? 무엇보다 완벽한 기교, 작곡자의 바람과 지시에 순응하는 지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연주를 들어야겠다.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겠으나,

아무래도 하스킬이 연주 수업을 한 시절이 비르투오소의 전성기, 연주자의 과장된 인성이 종종 작곡자와 청중을 압도하던 시기임을 생각하면 사정이 다르다. 연주가의 지상 과제가 정서적 동참은 도외시한 채 기량의 완성으로만 치닫던 시절에 하스킬은 시류를 그대로 반영하는 이상의 그 무엇을 가지고 연주에 임한 것이다.

그러니 하스킬은 이상적 해석자, 음악이라는 소통적 예술 의 중개자 역할을 해낸 셈이다. 하스킬이 연주에서 구현한 친밀한 분위기는 독보적이다. 레코딩 스튜디오의 냉랭하고 사무적인 분위기도, 연주장의 딱딱하고 의례적인 분위기도 없다.

마치 친구의 집에 여럿이 초대받아 직접 음악을 하거나 듣는 것 같다고나 할까. 하스킬의 연주는 요란한 치장이 없고 친근하며 망아적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틀 속에 힘과 생동감이, 세련되고 은근한 형태로나마 깃들어 있다.

순수하고 속세를 떠난 것 같으면서도 이따금 표현력과 기교의 힘을 빌어 고도의 예술적 순수성과 통일성, 명암의 깨끗한 균형을 연출해냄으로써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열정과 영웅적 분위기와 감상에 오염되지 않은 차분한 연주이지만, 흔히 고전의 유산이라 일컫는 밋밋한 연주 또한 아니다.

비르투오소성은 언제나 목적이 아닌 수단에 머물렀다. 순수하고 예술적인 클라라 하스킬의 연주에서 낭만주의적 과잉은 찾아볼 수 없으나 그렇다고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적 또한 없다. 다소 움츠리는 듯한, 거의 자신을 지워 버린 솔직하고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연주 뒤에는 언제나 하스킬 자신의 목소리가 있었다.

하스킬은 특히, 이상적인 모짜르트 해석가로 평가된다. 예리함과 우아함과 명쾌함에, 형식과 표현에 대한 남다른 모짜르트 음악의 정수를 끄집어내었고, 음 하나하나가 다 깨끗이 닦여 있다.
멘델스존의 다음 고백은 그대로 하스킬의 연주를 듣는 모든 이들의 고백이 되기를 바란다.

" 음악이 아무래도 언어보다는 덜 명확할 것이다. 그러나 언어보다 섬세하게 음악은 마음을 그려낼 수 있다. 마음 속에는 어떤 형용사 하나도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

pota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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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음악은 기도다
글쓴이 : potami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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