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빛낸 10인의 바이올리스트 2/10
David Oistrakh....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08∼1974)
다비드오이스트라흐는 살아 생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하이페츠에 버금가는 ‘2인자’이기만 했을까.
지난 96년 3월호 ‘객석’의 집중탐구기사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세계’를 보면, 음반부분에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명반을 역시
평론가와 칼럼니스트의 투표로 선정한 것을 볼 수 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명반으로는 샤를르 뮌슈 지휘,
하이페츠 연주의 것(보스턴 심포니, rca)이 선정되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이 오이스트라흐(클뤼탕스-프랑스 국립방송향, emi)다.
차이코프스키 협주곡도 역시 하이페츠의 연주(라이너-시카고 심포니, rca)가 오이스트라흐(오먼디-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cbs)
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람스 협주곡에서는 하이페츠가 아닌 레오니드 코간의 연주(콘드라신-필하모니아, emi)가 명반으로 선정되었고, 오이스트라흐(클렘페러-프랑스 국립방송향)는 그 다음이었다.
이들 모두는 다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음반들이지만
오이스트라흐는 불행히도 어느 하나에서건 윗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엔 협주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선 아직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만한 것을 찾아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오이스트라흐는 하이페츠같이 완벽하진 않았으나, 그 연주의
완숙도 면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이페츠의 연주는 ‘너무 완벽해 차갑다’는 평을 자주 들었으나 오이스트라흐는 그 반대로 ‘따뜻한 인간미가 넘친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위에서 말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연주도 하이페츠의 것을 ‘불타는 빙산’에 비유한다면 오이스트라흐의 것은 ‘얼음기둥 사이를 유유자적하게 헤엄쳐 다니는 금빛 물고기’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내향적·사념적이고 절제미가 돋보이며, 폭넓은 레가토를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었다.
이는 하이페츠의 연주 특성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지만 모든
면에서 하이페츠에 뒤지는 오이스트라흐의 변호를 위해 누군가 지어내준 것은 절대 아니다.
음악은 언제나 치열하고 숨가쁘게 몰아붙여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이스트라흐의 미덕은 나름대로 장점을 발하며 그만의
개성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오데사 태생의 오이스트라흐는 레오폴드 아우어의 제자가
아니었다.
어린시절 오데사 음악원의 또 다른 명교수 스톨리알스키에게
배운 그는 아우어파와는 다른 러시아 바이올린 인맥을 형성했다.
물론 테크닉은 하이페츠를 제외한다면 최고의 수준이었다.
1935년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 2위, 1937년 이자이 국제
콩쿠르 우승 등으로 구소련 밖으로 알려졌고,
길렐스의 경우와 비슷하게 구소련이 정책적으로 서구에
소개하는 연주가로 지목되어 많은 혜택을 누렸다.
레프 오보린과 리히테르와의 2중주를 중심으로 한 실내악
활동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이루어져 좋은 결실을
거두었다.
만년에는 지휘대에도 서는 모습을 보였으나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오히려 교육분야에선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할 수 있다.
크레머와 올레그 카간 등이 그가 길러낸 제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이고르 오이스트라흐는 그의 아들.....
월간 객석 박정준 기자

Beethoven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61
David Oistrakh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Violin
Andre Cluytensb 앙드레 클뤼탕스, Cond
Orchestre Nationa de la Radiodiffusion Francaise
프랑스 국립 라디오 오케스트라
1. Allegro ma non troppo
2. Larghetto
3. Rondo allegro
potamia님의 음원입니다...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Dmitry Shostakovich(1906-1975)
Violin Concerto No.1 in a minor, Op.77

쇼스타코비치와 오이스트라흐
1948년에 완성되었으나 1955년 초연 때까지 7년간 미발표란
공백을 지닌 작품이다.
이는 1949년 공산당에 의해 그의 작풍이 서구적 모더니즘에
감염되었다는 소위 주다노프 비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신의 예술에 대한 방향을 잡지 못한 혼돈 속에
발표가 늦어지게 되었다.
전4악장 구성으로 명상적인 야상곡풍의 제1악장, 주제와 8개 변주로 제3악장 파사칼리아가 곡의 핵심부분이다.
레닌그라드에서 예프게니 무라빈스키 지휘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와 오이스트라흐 바이올린 으로 초연되었다.
이곡은 오이스트라흐에게 바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