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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美學

또하심 2022. 4. 30. 20:27

10시 미사에... 피정가셨던 파비아노부주임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반가웠다.피정 끝나고 어제 오셨노라고,

내일 5월 1일부터 시작되는 성모의 달 기도로 전신자가 매일 저녁 9시에 각자의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바쳐 성모의 날 행사에 봉헌하도록 하라고, 신부님 말씀이니 확실하게 기도할 것이다.

미사후 뜰에 서계신 신부님께 진심으로 "신부님 돌아오셔서 기뻐요"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하이테너 목소리로 굴곡있게 웃으시기만!

좋은 신부님과 2년간 미사드릴 수 있구나 생각하니 진심 기쁘고 오랜만에 행복함이...^^

도서관에 들러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읽다.어째선가? 헤세와 헤밍웨이를 잠시 잠깐씩 헛갈려 한다.

이죽움의 미학에 있는 단편들이 죽음에 다다라가는 과정?인데 어째 별감동(죽음에 감동함은 어째 좀 그렇긴하지만)이 없다.

스테븐 크레인의 구명정에서도 난파한 선원 네명이 작은 구명정으로 폭풍의 바다를 지나 해변에 도착 기관장이 죽고,

기대 했던 죽음의 긴장감?긴박감...등이 별로다.

기대했던 잭 런던의 불 지피기도 젊은 청년이 뚜렷한 이유와 목적 없이 알라스카 오지의 험난한 겨울을 특별한 장비도 없이 여행하다가 결국 얼어죽고야 마는, 상상도 못할 영하 70~80도의 극한 추위속에서,

이상하다? 서늘하거나 오싹한 감정등도 없이, 우울증의 여파인가?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선건가?

오늘 신부님의 강론도 이 두려움에 관한 강론이셨는데

마스크는 썻지만 성가를 부룰 수 있어 몹씨 좋았다. 크게 크게 불렀다.비로서 완전체의 미사를 드리는 기분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