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한스 차임 마이어"
26세의 유대혈통인 마이어는 오스트리아를 떠나 벨기에에서 레지스탕스로 싸우다 나치에 체포
프랑스 남부수용소에 수감-탈출하여 벨기에서 2년 지하투쟁중 잡혀서
아우슈비츠-부헨발트-베르겐벨젠(나치수용소)등에서 2년이 지나 1945년 자유의 삶.
브뤼셀에 정착 스위스에서 독일어로 발행하는 신문의 문화부기자로
자신의 글과 작품이 독일에서 출간됨을 한사코 거부
독일의 젊은작가 "헬무트 하이센 뷔텔"이 무릅을 꿇고 눈물로 용서를 구하자 절친이 되고
"인간은 오로지 자기자신만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라고"
방송국에서 일하던 헬무트의 적극적인 홍보로 최악의 가난만큼은 면한 마이어는 글쓰기에 전념하며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정갈한 인생을 살았다.
1978년 66세의 나이로 고향 쟐츠브르크로 돌아가서 한적한 호텔에 방을 잡고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이제 나이를 먹어가며 죽음이라는 이름의 바이러스는 잠복해있던 은신처에서 뻐져나온다.
그져 뒤에 처져 헛된 자부심만 가지고 모든것을 부정하는 노인 이라는 비난은 정말 듣고 싶지 않다.(그렇고 말고...내생각도) 문화적으로 늙는 일의 품위는 그것이 그 가운데 자리잡은 사회적 노화의 품위와 마찬가지로 다시금 오로지 모순된 저항, 모순과 철저히 싸우는 저항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새로운 체계들은 이미 찾아왔다. 늙어가는 사람은 아무 희망도 없이 매일 새로운 체계를 해독하려는 싸움터로 나가야만 한다.
젊어서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은 늙을 수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젊었던 시절 죽음이라는 바이러스는 독성을 발휘하지 않는다.그런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늙어서야 그바이러스가 은신처에서 뻐져나와 어쩔 수 없이 내눈앞에 있음을 본다 확실하게....
욕심의 반대는 욕심이 없음이 아닌,
잠시 내게 머무름에 대한 만족입니다.
- 달라이 라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