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시렁거리기...^^

[스크랩] 넘치는 생명력,주술적 환상, 불멸의 지휘자 "푸르트 벵글러" 의 전설적인 공연 / 베토벤 교향곡 제 9번 "합창" - Beethoven Symphony No 9

또하심 2018. 2. 17. 19:47



 Beethoven Symphony No 9 conducted by Wilhelm Furtwängler, BPO March 1942 COMPLETE 

 NSDAP  =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1919-45) / Nazis

- April 20 1942 《 아돌프 히틀러》생일, 나치 (Nazis) 의 축하 공연  - 20170708challea5913 -



   Wilhelm Furtwängler conducting the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in a performance of Beethoven's Symphony No. 9 in D minor op 125. This recording was made in Berlin, recorded live 22-24 March, 1942.


1. Allegro ma non troppo, un poco maestoso  (0:00 to 17:20)
2. Scherzo: Molto vivace -- Presto  (17:20 to 28:48)
3. Adagio molto e cantabile -- Andante Moderato -- Tempo Primo -- Andante Moderato -- Adagio -- Lo Stesso Tempo  (28:48 to 48:37)


4. Recitative: (Presto -- Allegro ma non troppo -- Vivace -- Adagio cantabile -- Allegro assai -- Presto: O Freunde) -- Allegro molto assai: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 Alla marcia -- Allegro assai vivace: Froh, wie seine Sonnen -- Andante maestoso: Seid umschlungen, Millionen! -- Adagio ma non troppo, ma divoto: Ihr, stürzt nieder -- Allegro energico, sempre ben marcato: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 Seid umschlungen, Millionen!) -- Allegro ma non tanto: Freude, Tochter aus Elysium! -- Prestissimo, Maestoso, Molto Prestissimo: Seid umschlungen, Millionen! (48:37 to 1:13:34)


Tilla Briem, soprano
Elisabeth Höngen, alto
Peter Anders, tenor
Rudolf Watzke, bass


Bruno Kittel Choir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or Wilhelm Furtwängler


Recorded Berlin, 1942


https://youtu.be/GHlPC3CAZ20


if you haven't heard this version, then you're about to hear Beethoven's 9th for the first time...i love how fast the Presto is....unbelievable piece of history here.... also, the 1954 Bayreuth version is the second best performance ever....absolutely no alterna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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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1824년 2월 경 이 곡을 완성했고 그 해 5월 7일, 오스트리아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2년 전, 런던 필하모닉 협회로부터 새로운 교향곡을 부탁받았을 때, 베토벤은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교향곡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몇 년 전부터 작업해 오던 교향곡에, 실러의 시를 바탕으로 한 합창을 넣어서 새로운 형태의 교향곡을 써나갔다. 사실, 실러의 시를 사용한 노래의 선율은 그보다 훨씬 전인 1798년에 스케치 악보가 완성된 상태였는데, 그 때의 스케치가 25년이 훨씬 지난 후에야 〈합창 교향곡〉의 4악장에 사용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합창 교향곡〉의 지휘자 뒤에 서있는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지휘자 뒤에 서있는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초연은 베토벤의 지휘 하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휘는 움라우프가 했다.


베토벤 최후의 교향곡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그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교향곡으로 1824년에 완성되었다. 여덟 번째 교향곡을 작곡한 지 12년 만의 일로, 베토벤은 “교향곡은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기악곡”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 역사상 최초로 솔리스트와 합창단을 등장시켰다. 4악장에 합창이 나오기 때문에 이 곡은 ‘합창’이라는 부제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는데, 너무나 친숙한 이 노래는 독일의 시인 실러가 1786년에 발표한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인 것이다. 베토벤과 실러의 인연은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토벤은 20대의 청년 시절부터 괴테와 실러의 시에 심취해 있었고, 《환희의 송가》를 읽고 난 뒤에는 언젠가 이 시에 곡을 붙일 결심을 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고, 그 결심이 실현되기까지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1824년에 완성된 베토벤 최후의 교향곡으로, 교향곡에 합창을 등장시킨 혁신적인 작품이다. 베토벤이 남긴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곡은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환희의 송가’ 부분에 담긴 인류애적인 메시지 때문에 송년 음악회에서도 자주 연주된다.



〈합창 교향곡〉 초연에서 알토 파트를 맡았던 카롤리네 웅거

    

〈합창 교향곡〉 초연에서 알토 파트를 맡았던 카롤리네 웅거

그는 공연이 끝난 후 베토벤의 몸을 돌려 관중들의 큰 환호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실러의 환희의 송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전체 4악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중에서도 합창이 등장하는 마지막 악장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 마지막 악장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교향곡에서는 이례적으로 ‘스케르초’의 빠른 악장을 3악장 대신 2악장에 등장시켰고, 3악장에서는 영롱하고 맑은 분위기의 악장을 배치했다. 강렬하면서도 힘차고 밝은 기운이 느껴지는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를 지나 빠르고 경쾌한 2악장 ‘몰토 비바체’를 거쳐 3악장 ‘아다지오 몰토 에 칸타빌레’로 향하면, 숭고하면서도 서정성이 느껴지는 주제가 등장하면서 차분히 4악장을 준비한다. 그리고 피날레를 장식하는 4악장이 시작되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모든 악기들이 웅장하고 화려한 주제 선율을 연주하고, 마침내 베이스 독창자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 벗이여, 이제 이러한 노래 말고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하는 환희에 찬 노래를 부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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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서 중창과 합창이 어우러지는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진다. 이 곡조는 여러 악기로 편곡되어 연주되었고, 찬송가에도 등장해서 잘 알려져 있는데 실러가 붙인 1절의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환희여, 아름다운 주의 빛,
낙원에서 온 아가씨여,
정열에 넘치는 우리들은 그대의 성전에 들어가리.
그대의 매력은 가혹한 세상에 의해 떨어진 것을 다시 부합시키도다.
그대의 날개 위에 머물 때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되리.” 20170708challea5913  

무한한 인류애와 환희의 메시지를 담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지금까지 수많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특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해인 1989년 베를린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콘서트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은 “Freude(환희)”라는 독일어 가사를 “Freiheit(자유)”로 바꾼 ‘자유의 송가’를 선보여 독일인과 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Wilhelm Furtwängler (January 25, 1886 – November 30, 1954) was a German conductor and composer. He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greatest symphonic and operatic conductors of the 20th century.Furtwängler was principal conductor of the Berlin Philharmonic between 1922 and 1945, and from 1952 until 1954. He was also principal conductor of the Gewandhaus Orchestra (1922–26), and was a guest conductor of other major orchestras including the Vienna Philharmonic.

He was the leading conductor to remain in Germany during the Second World War, although he was not an adherent of the Nazi regime.[1] This decision caused lasting controversy, and the extent to which his presence lent prestige to the Third Reich is still debated.

Furtwängler's conducting is well documented in commercial and broadcast recordings and has contributed to his lasting reputation. He had a major influence on many later conductors, and his name is often mentioned when discussing their interpretive styles


〈합창 교향곡〉의 초연이 이루어진 1830년대의 케른트너토어 극장

〈합창 교향곡〉의 초연이 이루어진 1830년대의 케른트너토어 극장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

(1886년 1 25 ~ 1954 11 30)


초기 활동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 1886년 1월 25일1954년 11월 30일)는 독일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했다. 베토벤과 바그너를 존경했으며 그들의 음악을 주로 지휘하였다. 지휘자로 널리 알려졌지만 작곡가로도 활동하였으며 주로 낭만주의 고전 음악을 표방하였다.



지휘자, 작곡가 생활 초반 

나이 스물에 지휘자로서 데뷔할 시점까지 그는 작곡가가 되고자 라인베르거실링스에게서 배우고 몇몇 음악을 작곡했지만 그리 호평받지 못했다. 작곡가로서의 이러한 결과와 작곡가로서의 삶이 초래할 경제적 불확실성이 맞물려 20세부터 지휘에 집중하여, 각지에서 가극장의 보조 지휘자의 일부터 시작하였다. 그의 첫 공연에서, 그는 카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을 연주했다. 그는 순차적으로 뮌헨, 뤼베크, 만하임,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빈 필하모닉에서 지휘자 자리를 얻었고 이후 1920년에는 베를린 국립 관현악단, 1922년에는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르투르 니키슈의 뒤를 이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과 동시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자리를 차지했다.

푸르트벵글러는 1923년 덴마크 여성 치틀라 룬트와 만나 수개월간의 교제 끝에 결혼했는데, 치틀라 룬트는 푸르트벵글러와 결혼하려고 일부러 재력가 집안 출신인 덴마크변호사 전 남편과 일부러 이혼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푸르트벵글러가 여러 여성과의 사이에서 사생아가 존재하는데도 룬트는 그와의 결혼을 강행했다. 신혼 초기에는 사이가 좋았지만 치틀라 룬트는 불임이었고, 룬트의 불임 문제와 푸르트벵글러의 외도, 그리고 많은 사생아들, 결혼 이후에도 계속된 사생아 문제 등으로 결국 사이가 악화되어 1931년부터 별거에 들어가고 1943년 정식으로 이혼하게 된다. 한편 그의 사생아 중 엘리자베스 벨라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다크마르 벨라(Dagmar Bela, 1920 ~ 1999)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였다.


지휘자 활동

나중에 그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잘츠부르크 축제, 그리고 바이로이트 축제의 음악 감독이 되었으며, 이 지위는 그 당시 독일의 지휘자가 가질 수 있었던 가장 위대한 자리로 인식되어 왔던 자리였다. 이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빈 필하모닉 등에서 어느정도 안정된 자리를 얻게 되면서 그는 종종 작곡과 수필, 논설 발표 외에도 후배 지휘자들을 양성하고 가르치기도 했다. 그의 문하생들의 평에 의하면 자상하고 다정한 인물, 친절하고 상냥하며 사소한 것까지도 상세히 설명하는 등의 열정을 지녔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보다 실력이 출중한 인물에게는 극도의 경계심을 보였다는 평도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만난 세르주 첼리비다케에게는 특별히 호의적이었는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극도로 싫어한 그는 자신이 물러난 뒤 임시 지휘자로 있던 첼리비다케를 자신의 후임자로 내정하기까지 했다



예술지상주의자 푸르트벵글러,나치 협력자라는 오명

1933년 이래의 나치스 히틀러 정권하에서는 요제프 괴벨스에게 협력, 예술 옹호를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1935년 베를린 국립가극장의 총감독을 인수한 것을 계기로 결국 나치스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는 나치를 기피하고 혐오했는데, 음악회를 마치고 괴벨스와 악수한 뒤 손수건으로 오른손을 닦을 정도였다 한다. 요제프 괴벨스는 그의 작품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은근히 경멸했다 한다. 요제프 괴벨스는 그를 가리켜 '위대한 음악가라는 사실만 빼면 푸르트벵글러는 음흉한 어린애와 같다.'는 혹평을 남기기도 했다. 1942년에는 아돌프 히틀러 생일 기념 공연과 히틀러 생일 전야제 기념 공연의 지휘를 맡기도 했다.

1943년 엘리자베트 아커만을 만나 결혼했는데, 엘리자베트의 전 남편은 변호사로, 1940년 프랑스 침공 당시 장교로 참전했다가 전사하자 푸르트벵글러는 엘리자베트 아커만에게 열렬한 구애 끝에 성공했다. 1944년 엘리자베트 아커만과 재혼하면서 아커만은 전 남편과 낳은 자식들도 데려왔고, 푸르트벵글러도 이들의 계부 자격을 수락했다. 결혼 직후 엘리자베트는 아들을 임신했고, 일단 스위스로 가 있으라는 푸르트벵글러의 충고에 따라 스위스로 가서 취리히에서 아들을 출산했다. 안드레아스 푸르트벵글러는 그의 아들들 중에는 유일하게 정식 결혼으로 태어난 아들로 후일 고고학자로 활동하였다. 그밖에 푸르트벵글러의 사생아 딸인 다크마르 벨라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였다. 또, 엘리자베트가 데려온 전남편의 자녀들 중 딸이자 그의 양녀인 카트린 아커만은 독일의 배우로 유명하였다. 의붓딸 카트린 아커만의 딸이며, 다시 푸르트벵글러의 조카손자 중 한명과 결혼한 마리아 푸르트벵글러 역시 배우로 활동하였다.


생애 후반

1945년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연합군에 의해 전범 혐의로 연주 활동이 금지되었으나 일부 유대계 음악가들을 구제하는 등의 활동으로 1947년 무혐의를 인정받고 지휘 활동이 다시 가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다시금 연주계로 되돌아 갈 수 있었고 적극적인 연주활동을 재개한다. 1952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의 상임지휘자 직에 정식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만년에 이르러서는 신예 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의 경쟁하게 되어 각지의 지휘, 공연 요청에 응하며 각처를 다니기도 했다. 독일 외에도 오스트리아, 미국 각지의 오케스트라와 음악제에도 등장하였고, 만년의 명성은 세계의 음악애호가들 사이에 크게 울려퍼졌다. 만년에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청각 장애로 지휘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1954년 10월까지도 음반 작업을 하던 중 폐렴으로 바덴바덴 근교 에버슈타인부르크 요양소에 입원하였다가 얼마 뒤 68세의 생애를 끝마쳤다. 시신은 하이델베르크 시 시내에 있는 베르크 묘지(Bergfriedhof)에 있는 어머니의 묘소 오른쪽에 안치되었으며, 돌무덤으로 되어 있다.20170708challea5913[All the Abv quoted from Wikipadia ,Classic]



1928 portrait of Wilhelm Furtwängler by Emil Orlik


20170708challea5913  ~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chall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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