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ites for 6 Cello Solo,No.1~No.6
Johan Sebastian Bach(1675-1750)
Cello / Maurice Gendron
No.1 IN G Major, BWV 1007
No.2 IN D Minor, BWV 1008
No.3 IN C Major, BWV 1009
No.4 IN E flat Major, BWV 1010
No.5 IN C Minor, BWV 1011

모리스 장드롱 (1920~1990)
“내가 처음 공부할 때는 카세트도, TV도 없었고 오직 악기와 악보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오히려 잘된 것이었죠.
궁극에 이르면 예술은 결국 고독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장드롱이 지난 1985년 내한했을 당시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한말이다.
그도 토르틀리에에 못지않게 어렵게 공부했다.
하지만 그는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객관적인 연주로 토르틀리에와 좋은 대조를 이뤘다. 이러한 연주풍은 그의 말대로 고독 속에서 음악을 만들며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한다. 프랑스 남부의 니스에서 태어난 그는 신동이었다.
3세 때 이미 악보를 읽어냈다.주위의 권유로 5세 때부터 그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소형 첼로를 가지고 배우기 시작했다. 니스 음악원에서 최고 상을 받고 파리음악원으로 옮겨 제라르 에킹을 사사했다. 이 시절 장드롱은 넉넉지 못했으나 프랑스인 특유의 유머와 낙천주의로 지탱했다.
여기서 그는 당시 파리를 풍미하던 위대한 예술가들과 친교를 쌓고 예술적인 교류를 나눴다. 이 때의 교류가 그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40년, 파리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바로 연주계로 뛰어들어 활발하게 활동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장 프랑세와 공연했고 헤르만 세르헨, 멘겔베르크 등으로부터는 지휘도 배웠다. 그는 죽을때까지 지휘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47년 런던 필과 프로코피예프의 첼로 협주곡 작품 58을 유럽 초연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50년대 들어 파리에서 카잘스 지휘의 라무뢰 오케스트라와 하이든과 보케리니의 첼로 협주곡을 녹음했다. 카잘스는 각별히 장드롱을 아껴 그는 나의 황태자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역시 고독을 바탕으로 다듬어낸 그의 연주는 고독의 성인 카잘스의 마음에 꼭 들었을 것이다.
또한 그는 테크닉 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완성도를 지녔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필립스)도명연 중의 하나로 꼽힌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로 오전 연습을 대신하는 대표적인 첼리스트 장드롱은 연습벌레로 통하기도 했다. 장드롱은 역시내한 당시 연습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를 하나의 일화로 대신했다.
“어느 날엔가 피카소에게 첼로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죠.
이후 10년 동안 아무 말도 없어 포기하고 있으려니 어느날 불쑥 피카소가 첼로를 그린 그림을 내놓더군요. 놀라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피카소가 너한테 첼로를 그려 달라는 말을 듣고 10년 동안 매일 첼로 그리는연습을 했다. 이제야 마음에 들어보여주는 거다라고 대답하더군요. FONT color=#767173>예술은 오랜 세월 쌓여야 합니다.”
그래서 혼자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오히려 잘된 것이었죠.
궁극에 이르면 예술은 결국 고독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장드롱이 지난 1985년 내한했을 당시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한말이다.
그도 토르틀리에에 못지않게 어렵게 공부했다.
하지만 그는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객관적인 연주로 토르틀리에와 좋은 대조를 이뤘다. 이러한 연주풍은 그의 말대로 고독 속에서 음악을 만들며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한다. 프랑스 남부의 니스에서 태어난 그는 신동이었다.
3세 때 이미 악보를 읽어냈다.주위의 권유로 5세 때부터 그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소형 첼로를 가지고 배우기 시작했다. 니스 음악원에서 최고 상을 받고 파리음악원으로 옮겨 제라르 에킹을 사사했다. 이 시절 장드롱은 넉넉지 못했으나 프랑스인 특유의 유머와 낙천주의로 지탱했다.
여기서 그는 당시 파리를 풍미하던 위대한 예술가들과 친교를 쌓고 예술적인 교류를 나눴다. 이 때의 교류가 그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40년, 파리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바로 연주계로 뛰어들어 활발하게 활동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장 프랑세와 공연했고 헤르만 세르헨, 멘겔베르크 등으로부터는 지휘도 배웠다. 그는 죽을때까지 지휘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47년 런던 필과 프로코피예프의 첼로 협주곡 작품 58을 유럽 초연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50년대 들어 파리에서 카잘스 지휘의 라무뢰 오케스트라와 하이든과 보케리니의 첼로 협주곡을 녹음했다. 카잘스는 각별히 장드롱을 아껴 그는 나의 황태자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역시 고독을 바탕으로 다듬어낸 그의 연주는 고독의 성인 카잘스의 마음에 꼭 들었을 것이다.
또한 그는 테크닉 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완성도를 지녔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필립스)도명연 중의 하나로 꼽힌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로 오전 연습을 대신하는 대표적인 첼리스트 장드롱은 연습벌레로 통하기도 했다. 장드롱은 역시내한 당시 연습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를 하나의 일화로 대신했다.
“어느 날엔가 피카소에게 첼로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죠.
이후 10년 동안 아무 말도 없어 포기하고 있으려니 어느날 불쑥 피카소가 첼로를 그린 그림을 내놓더군요. 놀라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피카소가 너한테 첼로를 그려 달라는 말을 듣고 10년 동안 매일 첼로 그리는연습을 했다. 이제야 마음에 들어보여주는 거다라고 대답하더군요. FONT color=#767173>예술은 오랜 세월 쌓여야 합니다.”
출처 : tropp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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