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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와 여인들(천일의 앤)

또하심 2008. 5. 16. 21:26
 


사랑 받고 싶었던 왕 -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헨리 8세(1491~1547)

 

영국 튜더왕조의 두번째 왕이었다(재위 1509~1547) 그는 형의 아내인
캐서린과 결혼하여 몇 년을 같이 살았으나 둘 사이에 아들이 없자
이혼하고 앤 불린과 다시 결혼하지만 아들이 없어 다음 왕비를 들인다.
그렇게 해서 왕비가 모두 6명이다.
캐서린의 이혼과 앤 불린과의 결혼으로 인해서
카톨릭 교회와 결별하고 영국의 국교회를 성립하고 영국의
종교개혁을 단행한 왕이다.
실제로 헨리 8세의 외모는 튜더스의 조나단이나 천일의 스캔들의
에릭 바나 처럼 잘생기지 않았다.
풍채있는 몸매에  현재의 기준으로 봤을 때 미남형이 아닌 얼굴.
약간은 단순무식한 성격도 지녔었다.

 

 
그의 여인들

 

첫번째 왕비 - 아라곤의 캐서린(1485~1536)

 

헨리 8세의 첫번째 왕비이며 헨리 8세의 형수이기도 했다.
결혼을 했지만 그녀는 헨리 8세가 원하는 아들을 낳아주지 못했다.
하지만 캐서린은 아들을 가지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캐서린은 임신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는
딸(메리 여왕)이었다. 이에  크게 실망한 헨리는 더 이상 캐서린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다른 여인을 찾아 다녔다.
헨리는 불린 가의 딸 앤 에게 빠져 캐서린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하지만 캐서린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이혼을 하게되면  자신의 딸 메리는 사생아가 되고 또 아직
캐서린은 헨리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캐서린은  이혼당하고
그 뒤 암에 걸려 고생하다 헌팅던 킴볼튼성에서 사망햇다.
그녀는 자신이 헨리의 가장 진실되고 합법적인 아내라고 주장하였고
죽는 순간까지 헨리 8세를 그리워 하며 죽어갔다.

 

두번째 왕비 - 앤 불린(1501~1536)

 

이미 너무 유명한 여자로 천일의 스캔들과 튜더스에 나오는
헨리 8세의 두번째 왕비인 앤 불린이다.
그녀는 어릴 적 캐서린의 시녀 일을 시작했다.
앤은 아주 똑똑하고 영리해서 궁 안의 남자들은 모두
앤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했다.
그녀는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검은 머리와 눈 그리고
유머와 재치 그리고 당당함과 패션센스로 궁 안의 남자들을 휘어잡았다.
그러다 헨리 8세 역시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고 접근해서
자신의 정부가 되어달라고 하지만 그녀는 정식적인 결혼 전에는
절대 안 된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헨리 8세는 캐서린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카톨릭 교회와 결별하는 등의 일을 해 그녀와 결혼한다.
결혼을 하고 앤은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는 헨리 8세가 그토록 원하던
아들이 아닌 딸(엘리자베스 여왕)이었다.
헨리는 이에 크게 실망하여 다른 여인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제인 시모어에게 밀려 간통과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게 된다.

 

세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1505~1537)

 

앤의 드센 성격에 질려 버린 헨리 8세는 좀 더 여성스럽고 정숙한 여인을 찾는다.
그때 마침 캐서린 여왕의 시녀였던 우아하고 정숙한 제인이 헨리의 눈에 띄고
앤과 이혼한뒤 그녀와 결혼한다.
제인은 헨리와 결혼해 아이를 낳는데 그녀는 헨리가 그토록 원하던
아들(에드워드 6세)를 낳아 주었다.
하지만 제인 시모어는 아들을 낳고 눈을 뜨지 못하고 죽었다.
제인은 윈저성의 성 조지 교회에 묻히게 된다.
이때 헨리는 제인의 묘옆에 자신의 묘자리를 만들어 두었고
나중에 죽자 제인 시모어의 옆에 같이 눕게 되었다.

 

네번째 왕비 - 안나 클레페(1515~1557)

 

제인이 죽자 헨리 8세 는 또다른 왕비을 들이게 되는데 그는 독일
클레페 공국의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헨리는 초상화만을 보고 그녀를 선택하였는데 실제 모습을 본 헨리는
인사를 마치자 마자 도망갔고 결혼식까지 그녀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안나의 성격은 상냥하고 유순하고 재치가 있어 헨리가
호감을 가졌지만 합방은 할 수가 없다는 이유로 그녀와 이혼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셩격과 인품으로 헨리는 그녀를 친구로서 인정했고
그녀는 궁정 출입이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안나는 죽은 뒤에는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묻혔다(사실...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위의 사진은 심하게 미화된 사진이라고 합니다.)

 

다섯번째 왕비 - 캐서린 하워드(1520~1542)

 

그녀는 앤 불린의 외사촌 여동생으로 명문 하워드 가의 딸이었다.
그녀의 숙부인 하워드 공작은 앤 불린의 경우를 잘 알고 있어
앤과는 반대인 젊고 예쁘고 순종적인으로 처신 할 것을 교육하였다.
캐서린은 안나왕비의 시녀로 들어가게 되고 왕의 눈에 띄인다.
헨리는 안나왕비와 이혼하고 비밀리에 캐서린과 결혼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정숙한 여자가 아니였다.
캐서린은 결혼 전 몇몇의 남자와 문란한 행동을 거듭했었는데
결혼 후에도 계속 간통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헨리는 캐서린이 결혼 전부터 난잡한 생활을 했고
결혼 후에도 여전히 남자와 밀통했다는 이유로 반역죄를 선고해
그녀를 쳐형시키도록 한다.

 

여섯번째 왕비 - 캐서린 파(1508~1548)

 

캐서린 파는 왕과 결혼하기 전에  이미 두번의 결혼 경험이 있는 미망인이었다.
그녀는 헨리 8세와 햄프턴 코트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것이 헨리 8세의 마지막 결혼식이 되었다.
그녀는 헨리의 말년에 휴식이 되어 준 여자였다.
그녀는 헨리의 전처의 소생인 3자녀를 모두 정답게 대해 주었다.
그녀는 헨리가 매독과 관절염으로 고생할 때 헨리의 노화를
달래주고 받아준 착한 여인이다.
메리는 헨리가 병으로 죽자 토마스 시모어와 재혼을 했고 딸을 낳았지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죽게된다.

 

이렇게 수많은 여자와 결혼했던 헨리 8세 그의 삶은 정말로
영국 역사상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영화같고 드라마같이 파란만장하다.
하지만 그의 결혼 일화들을 살펴보면  헨리 8세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은 대부분  죽고 또 그는 그의 여인들과 했던 사랑들은 금방 식는다.
그는 많은 사람과 모든 것을 가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진실한 사랑을 얻지 못하고 죽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헨리 8세 하지만 그는 가장 원하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Anne Of The Thousand Days (千日의 앤) / Paul Mauriat